수세에 몰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플랜B’를 꺼내든 것일까.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속전속결’로 수도 키이우를 함락시키지 못하면서 불가피하게 전략을 바꿨다는 서방 정보 기관의 관측이 잇따르고 있다. 다른 주요 도시를 장악해 우크라이나인들의 목숨을 노리고 종국에는 영토 일부를 빼앗는 ‘압박 전술’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미 정보당국은 푸틴 대통령이 전략 변화에 나섰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의 당초 목표는 키이우에 곧바로 진격해 순식간에 함락시키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축출하는 것이었지만, 생각보다 완강한 저항에 가로막히면서 진전을 보지 못한 탓이다.
대신 러시아군은 해안도시 마리우폴 등 남부지역을 집중하고 있다. 다른 주요 도시를 포위 공격해 점령한 뒤 우크라이나 정부를 압박,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전술로 바꿨다는 얘기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러시아가 압박 전술을 통해 우크라이나 중립국화를 달성하고, 남부 및 동부 돈바스 지역을 가져가려 한다고 보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푸틴은 확실히 ‘포위 전술(siege tactics)’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2차 체첸 전쟁 때인 1999~2000년 그로즈니 지역을 공격할 때 쓴 전술이기도 하다. 이 전쟁으로 그는 총리로 올랐고 대통령까지 됐다.
더 큰 문제는 푸틴 대통령의 목표가 어디까지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가 휴전 명분으로 내세운 우크라이나 영토와 중립국화에 대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지금까지 확보한 지역을 계속 점령하면서 싸움을 계속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국민 입장에선 수 주, 길게는 수 개월간 러시아군의 원거리 포격이나 폭격에 시달려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이 같은 ‘플랜B’ 분석은 공식적인 정보 평가 결과가 아니고 일부 정보당국 관계자들의 시각이라고 전했다. 다니엘 프리드 전 주 폴란드 미국 대사는 “푸틴 대통령의 목표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라며 “단지 그의 전술이 바뀌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지금 공격을 퍼붓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저항하기 때문”이라며 “우크라이나 정부는 결국 제거돼야 한다. 이게 스탈린식 숙청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