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고,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다.”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마오쩌둥(毛澤東)의 어록이다. 정치와 전쟁은 그 속성이 같고, 전쟁은 국제정치의 수단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돼온 국제질서에 무력으로 현상변경을 시도한 역사적 사건이다. 푸틴의 의도는 단기간 내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고 젤렌스키 정권을 무너뜨려 친러정부를 세우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에 제동을 걸고 러시아의 안보를 지키는 구상이었다. 궁극적으로는 냉전 종식 이후 쪼그라든 러시아의 위상을 회복하고 미중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존재감을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개전 25일째를 넘어선 지금 단기전은 실패로 규정되는 분위기다. 재래식 전쟁을 치르는 러시아를 최첨단 미군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푸틴은 정치에서도 실패하고 있다. 유럽에서 중립적이던 나라들까지 모두 미국 편에 서게 됐다. 민간인을 공격하고 잔학행위를 서슴지 않는 모습은 그를 국제사회 ‘공공의 적’이자, 전범 히틀러의 반열로 올려놓았다. 침공 전 독일이나 프랑스는 러시아의 영향력을 일정부분 인정하고 유럽에서 공존을 실천해왔지만 지금은 입장이 명확해졌다. 동맹·우호국을 한데 묶는 데 어려움을 겪던 바이든 미 행정부에 푸틴이 선물을 안겼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이 돌아왔다”는 취임 일성이 ‘허언’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던 바이든은 이번 일로 손쉽게 목적을 달성했다.
푸틴을 말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시진핑 중국 주석을 흔히 말한다. 그러나 중국이야말로 중대한 시험대에 올라섰다. 중국은 러시아를 비난하는 세계 각국과 거리가 멀어졌다. 중국이 챙긴 이익이라곤 미국이 동아시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졌다는 것 정도다. 반면 향후 중국이 맞닥뜨릴 불길한 징조는 널려있다. 유일한 친구인 러시아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산 원유나 원자재 수입, 금융거래 등에서 손해를 감수하며 혜택을 베풀더라도 서방의 제재가 계속되고 푸틴이 권력을 유지하는 한 중국은 함께 늪에 빠져들 공산이 크다. 골칫거리를 계속 옆에서 도와주는 꼴이 된 것이다.
더 큰 치명상은 경제제재가 주는 실질적인 ‘억지력’이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의 규모나 포괄성, 그 효과는 국제사회의 동반출혈을 감수하더라도 시간이 갈수록 커질 것이다. 대만을 침공할 경우 중국에 돌아갈 파괴력을 중국은 간접 체험하는 중이다. 이번 사태로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 회사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고 있다. 체제가 안고 있는 정치적 위험을 경험한 외국 회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중국 밖으로 눈을 돌리도록 내몰리게 될 것이다.
러시아가 초기 전략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상대국을 얕본 안이함이다. 철저히 준비하지 않은 초기 전황이 그 증거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에서 피해국 지도자나 국민의 항전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전 세계에 보여줬다. 어느 나라든 최악의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 국방부가 무기를 버리고 평화를 논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그건 통일부가 하면 된다. 강하고 호전적인 군대가 필요하다. 국방과 평화통일, 두 가지 카드를 양손에 쥐고 결정은 대통령이 하면 된다. 이게 국제정치에 나서는 국가의 ‘지렛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