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흔들려도 반성의 시간부터

입력
2022.03.18 18:00
22면
일부를 전부인 양 책임 지우면 비합리적 
문 정부,  통합과 협치 기회 버린 책임 커
이 후보, 1600만 표심 모두 자신 것 아냐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사엔 반성문을 남기고 떠났으면 한다는 채이배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의 말이 논란이다. 청와대 출신 의원들부터 당이 추구하는 ‘분열 없는 비판’에 어긋난다며 거칠게 비난했다. 대선 패배의 전적인 책임을 대통령에게 묻는 건 과한 측면이 있다. 다만 반성의 시작인 점에서 이번 논란은 반길 일이다.

민주당 입장에서 선거에 패한 당을 추스르기 위해 ‘흔들리지 않게’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방패가 되어 반성이 없다면 더 큰 문제다. 잠시 흔들리더라도 날을 세워 논의하고 비판해야 한다. 차이는 있겠지만 이재명 후보, 민주당, 문 대통령에게서 선거 패인을 찾는 게 수순이다.

문 대통령은 국정을 이분법으로 재단하고, 정책 편가르기가 우선하지 않았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5년 전에 문 대통령에겐 한국의 링컨이 될 기회가 주어졌다. 취임 때의 정치적 명분과 지지기반은 어느 대통령보다 강력했고, ‘박근혜 탄핵소추안’에는 무려 의원 234명이 찬성했다. 야권 171표에 새누리당 63명이 더해진 ‘찬성 234’는 무엇이든 가능한 숫자였다. 통합, 협치는 멈춰버린 민주주의를 움직이게 만든 촛불이 제시한 민주주의 경로처럼 보였다.

문 대통령도 당선 순간 통합의 나라, 반대자도 섬기는 통합의 대통령을 말했다. 약속대로 보수와 중도보수 국민을 껴안았다면 이해찬 전 대표가 말한 20년 집권은 아니어도 박수 받을 일만 남았을 것이다.

그 길을 놔두고 간 곳이 적폐청산이었다. 선거 패인을 떠나 문 정부의 가장 아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지지층 결집에 더해 대중의 카타르시스 속에 지지율은 고공행진했지만 반대편에서 분열과 역풍의 압력은 커져만 갔다. 이를 가장 상징한 장면이 적폐청산 주역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운 보수의 승리였다.

이런 점에서 반성의 말을 남기라는 채 위원의 지적은 틀리지 않다. 열 가지 옳은 얘기 중 한 가지만 말하는 것에도 용기는 필요하다. 다만 문 정부의 실정과 실책이 분명하다 해도 선거 패배의 전부인 양 말해지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정치에선 일부만 지적하면 옳은 얘기라도 이상하게 해석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만 믿고 독주해온 민주당 책임은 더 커 보인다. 작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패하고도 대통령 지지율이 유지되자 여권의 자숙 모드는 사라졌다. 결국 강성 지지층만 결집시키고 의석수에 기댄 오만한 입법 독주가 대선 패배를 부추긴 게 사실이다. 임기 말인데도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5년 전 대선투표 득표율(41%)보다 높다. 전례가 없는 일이나 민주당은 오히려 이에 발목을 잡히지 않을까 조심하고 경계할 때다.

이재명 후보는 개인 문제를 떠나 그의 사람들이 당을 장악하고 있다는 비판이 벌써 나온다. 반성의 시간에 뭔가 잘못 돌아가는 신호인 게 명백하다. 지금까지 1,600만 표 넘게 얻은 후보가 자신밖에 더 있냐고 한다면 이야말로 공사 구분이 없는 것이다. 저 숫자에는 이 후보가 매력적이어서 지지한 표도 있겠지만 윤석열 당선인이 싫어서, 문 대통령이 좋아서 찍은 표들이 아마 더 많을 것이다.

그것을 자신에 대한 지지로 착각해선 그간 쌓은 정치자산을 탕진하는 길이고, 다가올 역풍에 맞서기도 어렵다. 더구나 당을 방패막이로 삼을 생각은 일찌감치 버려야 한다. 밖에서 해결해야 할 자신의 문제를 끌고 들어오면 당은 사당화될 수밖에 없다. ‘문파’ 같은 팬덤정치와 저격문화로 당을 침묵시키는 일이 반복된다면 정상적인 의회정치가 작동할 수 없고, 이 후보의 미래도 장담하기 어렵다.

선거에서 2등은 없다. 다시 승자 독식의 세계가 시작되고 있다. 민주당이 5년 뒤를 생각하며 버텨내려면 반성의 시간부터 가져야 한다.

이태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