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억 꿀벌들아 어디갔니" 벌 집단 실종에 전국 양봉 농가 '속앓이'

입력
2022.03.20 15:00
전국적으로 꿀벌 약 70억 마리 집단 실종
농촌진흥청 "해충·이상기후 때문" 
전문가 "꿀벌 사라지면 '식량위기' 가능성"
정부의 미온적 대처에 비판 목소리도

"평소 같으면 벌들로 가득 차 있어야 할 벌통인데 지금은 다른 해와 비교해서 약 40% 정도가 사라졌어요. 양봉업은 5, 6월이 대목이라 그때 바짝 꿀을 팔아서 1년 먹고사는 건데, 이렇게 되면 올해는 망했죠. 정말 큰일입니다."

전남 고흥에서 20년 가까이 700통 규모의 벌 농장을 운영 중인 안관호(63)씨는 18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전국적으로 꿀벌이 사라지면서 양봉 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농림축산검역본부, 지방자치단체, 한국양봉협회와 합동으로 1월 7일~2월 24일 전국 99개 양봉농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국적으로 벌들이 사라진 것으로 파악됐다. 최용수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원은 1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국양봉협회에 등록된 농가 중 18%가량이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약 70억 마리의 꿀벌이 자취를 감춘 셈이다.

전남 고흥에서 30년째 250통 규모의 벌 농장을 운영 중인 장상용(65)씨도 "모든 벌 통을 열어 보면 벌들이 평년 대비 약 30~40%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음을 다잡고 처음부터 농사를 다시 시작해 보려 해도 개당 15만 원 하던 벌통이 지금은 35만 원까지 치솟았기 때문에 엄두가 나질 않는다"며 "내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될까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반성진(72) 한국양봉협회 전라남도 지회장은 "이렇게 꿀이 부족해지면 꿀과 관련된 모든 식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벌 농장이 다시 농사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벌통을 사야 하는데 지금 벌통 가격이 너무 비싸서 그것도 쉽지 않다"며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해충과 이상기후로 꿀벌이 사라졌다? '바이러스' 의혹 제기도

그렇다면 이렇게 전국에 걸쳐 꿀벌들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적으로 '꿀벌 군집붕괴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의 중요한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기생성 해충 '꿀벌응애'다. 국내의 꿀벌 집단 실종 역시 꿀벌응애가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농촌진흥청은 "거의 대부분의 피해 집단에서 응애가 관찰됐다"고 밝혔다.

꿀벌응애는 꿀벌을 숙주로 삼는 기생성 해충으로, 양봉 농가는 살충제를 써서 해충을 예방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해 양봉 농가가 꿀벌응애 발생 자체를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사양 꿀과 로열젤리를 생산하느라 적절한 시기에 예방을 못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외에 이상 기후도 꿀벌 실종의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9, 10월에는 평년보다 낮은 기온으로 꿀벌들이 완전히 발육하지 못한 채 이른 시기 월동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11, 12월에는 예년보다 기온이 높아 꽃이 폈고, 월동 중이던 벌들은 벌통 밖으로 나가 화분 채칩 등 외부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외부 기온이 다시 빠르게 낮아져 체력을 다 써버린 벌들이 벌통으로 돌아가지 못해 집단 폐사했다는 것이다. 최 연구원은 "환경이 시발점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바이러스가 원인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정현조 양봉협회 경상남도 지회장은 "(자신이)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의뢰한 조사 결과서에는 꿀벌에서 총 9종의 바이러스가 검출된 것으로 적혀 있다"면서 "하지만 현재 진흥청이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꿀벌 실종 이유로 '바이러스'가 빠져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꿀벌 사라지면 '식량위기' 온다

더 큰 문제는 꿀벌이 사라질 경우 인간의 일상 생활까지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주요 농작물이 꿀벌의 수분 활동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꿀벌이 멸종하면 인간은 결국 식량 부족에 허덕이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100대 농산물 중 약 71%가 꿀벌을 매개로 수분을 한다. 꿀벌이 없다면 당장 100대 농산물의 생산량이 현재의 29%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2015년 하버드 공중보건대 연구팀은 꿀벌이 사라질 경우 과일·채소 등 생산량이 줄고, 식량난과 영양 부족으로 한 해 142만 명 이상이 사망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 농작물을 꿀벌 없이 인공수정으로만 키울 경우 식량 가격도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최 연구원은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생존할 수 없다"며 "돈 있는 사람이 식량을 선점하고 없는 사람은 식량 확보를 못 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꿀벌 멸종이 사회적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대처에 대한 비판 목소리 나오기도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진흥청 등 관련 기관은 경영 안정 자금 지원, 친환경 방제 기술 개발, 무인기(드론) 방제 기술 개발, 꿀벌 관리 매뉴얼 배포, 살충제 사용요령 교육 등 종합 지원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정부의 대처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반 지회장은 "정부 대책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아직까지 현장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며 "적절한 지원책이 빨리 마련되지 않으면 (양봉 농가들이) 집단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 지회장은 "양봉업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 현 상황의 심각성을 꾸준히 말했지만 현장에는 농림부 담당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며 "민관 합동조사에서도 농림부는 빠졌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탄원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성 농림축산식품부 사무관은 "지난달 22일 현장을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방문 하루 전인 21일 부서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격리하느라 방문이 취소됐다"고 말했다. 이어 농림축산식품부가 민관 합동조사 명단에서 빠진 것도 "당시 현장에 방문하지 못해서 조사 명단에서 빠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호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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