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실이 운영하는 북한이탈주민권익센터에 탈북민 출신 의사 9명이 찾아왔다. 탈북 의사들의 고충은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에서 주관하는 의사 국가시험(국시)에서 북한 출신들만 별도의 전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국시를 치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사전 구술면접의 문턱을 넘지 못해, 국시 문턱에 한 번도 도달하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탈북 의사 A씨는 "1년 동안 합숙하면서 열심히 공부했지만 북한 특목고 출신 의사도 탈락할 만큼 면접 문턱이 너무 높다"며 "사전 면접시험은 간소하게 하고 의사 자격시험을 볼 기회를 달라"고 말했다.
17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일반적으로 해외 의대·간호대 졸업자가 국내에서 면허를 얻으려면 국시를 보기 전 졸업증명서, 면허증 등을 제출해 응시 자격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탈북 의료인은 졸업 사실이나 활동 경력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현실적 한계로 사전 면접을 통과해야만 국시에 응시할 수 있다.
탈북 의료인들은 국시에 앞서 치르는 사전 면접이 지나치게 어렵고 까다롭다고 주장한다. 국내 의사 면허 취득을 준비하는 탈북 의사 B씨는 "면접에서 의대 1학년 때 단 몇 시간 배우는 생체 조직에 관한 생화학 공식 등 아주 세세한 분야까지 질문이 들어오니 힘들었다"며 "정답이 정해져 있는 시험과 달리 면접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한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남북한 교육·문화 차이에서 비롯되는 의학 용어 차이, 영어 실력, 의료기술 격차 또한 탈북 의료인들이 넘어야 할 산이다. 탈북 의사 C씨는 "북한은 영어권 국가가 아니고 영어 교육의 비중이 한국처럼 높지 않다"며 "용어부터 새로 공부해 2, 3년 이상 준비해도 구술면접을 통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시원은 의료인 경력을 거짓으로 주장하는 일부 지원자를 거르려면 이런 절차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국시원은 구술면접 수준도 높지 않다고 본다. 이윤성 국시원장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신장의 기능, 좌·우심실 등 해부학을 공부한 의사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지식조차 갖추지 못한 지원자도 있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달려 있는 의료인 자격을 부여하는 문제인 만큼 필수요소”라고 강조했다. 또 이 원장은 "탈북 의료인의 현실적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면접 응시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성호 의원이 국시원으로부터 받은 '탈북민 의료인국가시험 응시 및 자격인정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면접에 응시한 탈북 의료인 18명 중 치과의사 응시생 2명을 제외한 의사·한의사·간호사 응시생 전원이 탈락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전체 응시생 55명 중 국시 응시 자격을 인정받은 인원은 9명으로 합격률은 16.4%에 불과하다. 5년간 국시를 치른 탈북 의료인 46명 중 최종 합격자는 15명이다.
탈북 의료인이 국시에 대비할 인프라가 부족한 만큼 지원체계가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북하나재단 관계자는 "2018년부터 원광대에서 실기시험 실습장을 제공하는 등 탈북 의료인을 위한 지원 체계가 조금씩 강화되고 있다"며 "의사 뿐만 아니라 간호사·약사 등 다른 직종에 대한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