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는 9·11 테러 매일 겪는다” 젤렌스키, 美 의회 연설 지원 호소

입력
2022.03.16 23:34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 美 의회 화상 연설 
비행금지구역 설정 강조...전투기 지원 요구

“당신들을 공격하던 비행기가 하늘을 까맣게 덮었던 1941년 12월 7일 진주만의 끔찍한 아침을 기억하십시오. 악의 무리가 당신들의 도시를 뒤엎고, 독립된 영토를 전장으로 만들고, 무고한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공격을 받던 2001년 9ㆍ11 끔찍한 하루를 기억하십시오. 우리 나라는 지금 (미국이 과거에 겪었던 것과) 같은 일을 매일 겪고 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미국 상ㆍ하원 의원들 앞에서 화상으로 진행한 연설의 한 대목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과 9ㆍ11테러의 끔찍했던 기억까지 언급하며 미국의 추가 지원을 호소했다.

그는 이날 워싱턴 국회의사당에 모인 미 의원들 앞에서 20분 가까이 화상 연설을 진행했다. 미국을 방문한 외국 정상이 미 의회에서 직접 연설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화상 연설은 드문 경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지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세계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평화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라며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의 더 많은 개입을 요구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다시 강조하면서 “러시아가 우리의 자유로운 도시를 공포에 떨지 못하게 하는 인도적인 비행금지구역 요청이 지나친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이것이 지나친 요구라면 대안을 제시한다. 당신들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방어 시스템을 필요로 하는지 안다”라며 전투기, 방공시스템 지원도 호소했다.

또 미 의회에 우크라이나 공격을 지원하는 모든 러시아 정치인 제재, 러시아 자금 동결, 모든 미국 기업의 러시아 철수 등도 촉구했다. 그는 “러시아의 전쟁 기계가 멈출 때까지 매주 새로운 제재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설 막바지 평화롭던 우크라이나 풍경과 러시아 침공으로 고통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 국민 등이 담긴 1분 30초짜리 영상을 틀기도 했다. 그는 또 우크라이나어 연설 말미에는 통역 없이 영어로 바이든 대통령의 지원과 결단을 호소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님, 당신은 위대한 나라의 지도자입니다. 당신이 세계의 지도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계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평화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미 의원들은 연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중간 중간 기립박수를 보내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에 호응했다. 몇몇 의원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소개하면서 ‘슬라바 우크라이나(Slava Ukrainiㆍ우크라이나에 영광을)’라고 외치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앞서 캐나다 의회에 중계된 화상연설에서도 “만약 러시아가 캐나다 밴쿠버를 포위하고, 오타와 공항을 폭격하거나, 토론토 CN타워를 공격한다면 캐나다인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라며 지원을 호소했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김청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