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한 몰이'에 이용해 놓고... 안현수에 싸늘해진 중국 팬들

입력
2022.03.16 20:30
부인 운영 화장품 회사 웹사이트 '대만' 표현 지적
중국 네티즌 비난에 기업 홍보모델 계약도 중단
한중 쇼트트랙 라이벌 관계 상징으로 내세웠지만
국가주의적 네티즌 외국인에 배타적 태도 드러나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의 기술코치를 맡았던 전 한국·러시아 국가대표 안현수(빅토르 안)에 대한 중국 내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부인이 운영하는 화장품 회사 인터넷 쇼핑몰에서 국가 표시 가운데 '대만'을 넣은 것이 중국 내에 알려지면서다.

안현수가 중국 내 최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시나 웨이보를 통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는 표현을 쓰며 사과했지만 중국 네티즌의 반응은 냉담하다. 안현수의 팬 그룹을 제외하면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14일 안현수는 자신의 웨이보에 '대만 표기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가족의 브랜드 사이트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기본 설정에 따라 오류 메시지가 게시됐다"면서 "현재는 수정됐다. 오류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에서 코칭을 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고 많은 팬과 네티즌에게 응원을 받아 감사하다"면서 "나와 가족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해 왔다"고 덧붙였다.

안현수의 사과는 부인 우나리씨가 운영하는 화장품 브랜드 '나리'의 인터넷 사이트에 대만을 국가로 표기했다는 부분이 중국 내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데 따라 나온 것이다. '나리' 역시 홈페이지에 영어와 중국어 2개 국어로 된 사과문을 게재하고 "웹사이트가 협력업체에 의해 운영돼 오류가 생겼다"며 "오류를 수정하고 협력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하나의 중국 원칙 지지' 표현에도 "입장 분명히 해라" 비판 계속


비교적 발빠른 반응에도 중국 내부의 반응은 냉담하다. 14일 중국 유제품 기업 쥔러바오(君樂寶)는 분유 브랜드와 안현수가 맺고 있던 '브랜드 파트너십'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쥔러바오는 앞서 중국의 쇼트트랙 선수 한톈위와 코치 안현수를 함께 브랜드 홍보모델로 선정하면서 '챔피언 뒤에 챔피언이 있다'는 콘셉트로 홍보물을 만들었지만, 안현수가 논란에 휩싸이자 협력 관계를 끊은 것이다.

중국 네티즌 반응도 안현수의 해명이 불충분하다는 게 주류다. 안현수의 사과문 웨이보에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은 "중국 인터넷에만 올리지 말고 다른 곳에도 올리라"라는 메시지다. 또 "애매한 표현을 쓰지 말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분명한 표현을 쓰라"는 댓글도 많은 지지를 받았다. "한국과 러시아를 배신하더니 이제 중국마저 배신하나" 같은 극단적 반응도 눈에 띈다.

물론 중국 내 '안현수 팬덤'의 반발도 없지 않다. 이들은 "한국인인 안현수에게 중국 주권에 관한 메시지를 다른 SNS에 남기라는 것은 과도한 요구"라면서 "중국 대표팀 코치로 그의 공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안현수의 과거 행적에 대해서도 올림픽 출전을 위해 국적을 변경했을 뿐이라고 옹호했다.


"억울하게 쫓겨나 중국 온" 안현수지만, 중국인은 아니었다


앞서 올림픽 기간 중국 내에서 안현수에 대한 긍정적 여론은 스포츠 팬덤 외에도 한국과 중국 쇼트트랙 팀 간 '라이벌 관계'를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형성됐다.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안현수가 국내에서 '파벌 싸움'에 시달려 국가대표 자리를 잃었고, 러시아로 귀화해 메달을 획득했으며, 선수 경력이 끝난 후에는 중국이 그를 불러들였다는 서사다.

안현수와 친분이 있으며 그를 코치 자리에 추천한 중국 팀 왕멍 전 감독은 "러시아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자기 무대를 갖고 싶어하는 그를 내가 데려왔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하지만 안현수는 국가주의 성향이 매우 강한 중국 네티즌 입장에서 완전히 "우리 편"이 될 수는 없는 인물이었다. 웨이보의 네티즌은 쥔러바오에 대해서도 "중국에도 훌륭한 선수들이 많으니 그들을 홍보대사로 쓰라"는 충고를 남겼다.


국가주의 성향 짙은 중국 네티즌, 귀화 선수 향해서도 사이버불링


중국 네티즌의 국가주의적 태도는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자국 대표팀으로 출전한 선수를 겨냥한 사이버불링에서도 나타났다. 중국계 미국인이었다가 중국으로 귀화해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한 피겨스케이팅 선수 주이(朱易)는 단체전에 참가해 넘어졌다는 이유로 "왜 본토 선수들을 제치고 선발됐냐"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반면 베이징 올림픽 스키 종목에서 금메달 2개를 비롯해 메달 3개를 딴 귀화 선수 구아이링(谷愛凌·에일린 구)은 좋은 성적을 내면서 네티즌 사이에서 '나라의 자랑'으로 떠받들여졌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뒤 미국으로 돌아가 공부를 계속 할 것이라는 소식이 나오자 "배신자" "중국에서 돈만 벌고 떠난다" 등의 표현을 써 가며 돌변했다.

인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