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많은 드라마들이 불법 촬영 범죄를 소재로 이야기를 풀었다. 이 가운데 SBS 드라마 '사내맞선'의 접근 방식은 불편하지 않다. 제작진이 소재의 무게감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주로 불법 촬영 범죄를 다루는 드라마들은 범죄 스릴러, 혹은 액션극이다. 보통 에피소드를 위한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피해자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히어로를 표방하는 극중 주연들이 사건 해결에 나선다. 이후 피해자의 회복을 돕거나 통쾌한 복수가 이어진다. 과거 '호텔델루나'가 그랬고 최근에는 '사내맞선'과 같은 날 방송되고 있는 tvN '군검사 도베르만'이 이 궤도 안에 있다.
'사내맞선'은 분명히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피해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분명하다. 그간 대부분의 불법 촬영 범죄 에피소드를 다룰 땐 피해 상황이 담긴 영상이 전파를 탄다. 여성이 의식을 잃었거나, 신체 일부가 노출되는 상황을 직접적으로 그린다. 그러나 '사내맞선'은 주인공인 신하리(김세정)과 진영서가 집에 함께 있는 모습 등으로 우회한다.
특히 피해 사실을 안 진영서가 직접 경찰에 신고한 후 증거품을 들고 움직인다. 여성이 범죄에 노출된 것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분명 획일화된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피해자들이 범죄 이후 소극적으로 대처하거나 타자의 힘으로 상처를 극복하는 모습이 미디어에서 담겼지만 자신의 피해에 목소리를 높이고 "악의적으로 접근해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인물은 낯설고 또 신선하다. 아울러 경찰의 대사를 빌려 현행법 상 처벌이 미약하다는 점 역시 분명하게 짚어준다.
극이 로맨틱 코미디 장르고 전체적으로 가벼운 분위기를 지향하지만 문제점에 대해선 확실히 다룬다. 진영서가 이 사건 이후 트라우마를 겪는 모습이 이어진다. 진영서는 이후 집이 아닌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했다.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불법 촬영 카메라에 대한 공포심이 자극된 것이다. 진영서는 신하리에게 "별일 아니다"라면서 애써 털어내지만 트라우마로 남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범죄 피해자에게 쉽게 지나갈 수 없는 상처가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다만 아쉬운 부분도 존재한다. 남자 주인공들의 개입과 사건 해결 방식이다. 진영서가 불법 촬영 범죄를 저지른 남성에게 힘으로 전등을 빼앗겨 차성훈(김민규)가 범인을 붙잡았고 강태무(안효섭)가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를 실행한다. 강태무는 또 다른 피해자들의 증언을 모았고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 범죄자가 다니는 회사를 인수해 해고를 예고했다. 강태무가 재벌 2세라는 점을 이용한 점이다. 여성 피해자들이 직접 복수했으면 더욱 시원한 쾌감으로 남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진영서의 불법 촬영 피해 트라우마가 차성훈과의 러브 라인 전개 형성으로 이어진다는 것 역시 다소 미흡한 결말이다. 거듭 화장실을 기피하던 진영서는 생리현상이 급해지면서 차성훈 앞에서 화장실을 찾아 헤매게 되고 진영서는 민망한 마음에 차성훈을 피해 도망 다니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차성훈은 자신을 피하는 진영서에게 묘한 감정이 들고 두 사람의 썸이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그럼에도 '사내맞선'의 불법 촬영 범죄를 다루는 연출은 의미가 남다르다. 작품은 원작에 없는 에피소드로 이 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현행법의 허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일반적이지 않은 피해자의 모습을 그리면서 미디어에 경종을 울렸다. 무게감 있는 소재를 다룰 때 콘텐츠 창작자들이 가져야 할 좋은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