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정당의 안타까운 패배

입력
2022.03.16 18:00
26면
소수 정당 존재감 더 약해진 대선 결과
비례제 확대, 대선 결선투표 개혁 절실
국민의힘 선거법 개정 더는 반대 말길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 패해 5년 만에 정권을 넘겨주게 됐지만 불과 0.7%포인트 득표 차는 참담할 정도의 결과는 아니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이 민주당 내에서 번지는 것을 위기 의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엉뚱한 정신 승리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셌던 정권 교체 바람을 생각하면 다소 예상 밖의 결과인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대선의 승자는 1인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패자다. 간발의 차이로 고배를 마신 민주당 후보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후보도 패했다. 민주당의 패배는 뼈아프긴 해도 47.8%의 지지와 성원이 가볍지는 않다. 사실 그보다 더 안타까운 패배는 정치 역량을 발휘해 다당제의 토대를 만들어갈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는 국민의당, 정의당 등 소수 정당 후보들 쪽이다.

대선 기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단일화 질문에 줄곧 그럴 일 없다던 안철수 후보는 아니나다를까 막판에 완주를 포기했다. 거대 양당의 기득권 정치에 신물 내며 제3세력의 성장을 바라던 지지자들이 배신의 감정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심상정 후보는 지난 대선의 6.2%에 한참 못 미치는 낮은 득표로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정의당의 전략이나 심 후보의 역량 탓도 있겠지만 거대 정당 아니면 안 된다는 유권자 심리가 상당히 작용한 결과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며 이념 성향이 정반대인 거대 양당이 번갈아 독차지하듯 정권 잡는 데 따르는 폐해가 적지 않다. 권력 잡은 세력은 전 정권 지우기, 모욕주기를 통과의례처럼 여긴다. 정권을 빼앗긴 쪽은 새 대통령 임기 내내 생산적인 정책 비판보다 흠집내기나 반대를 위한 반대에 골몰한다. 민주화 이후 우리 정치가 점점 더 이런 상대 결딴내기식 정치싸움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제에서는 다당제가 어렵다고들 한다. 승자독식 구조에서 대통령의 제왕 같은 행태를 바꿀 수 있겠느냐고도 한다. 실제로 통합이나 협치를 말하지 않은 정부가 없었지만 김종필과 손잡고 출범한 김대중 정부 같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다. 심지어 그 DJP 연합마저 임기 내 파국을 봤다.

그렇다고 제도적으로 다당제의 가능성을 열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민주당이 최근 당론으로 채택한 정치개혁안은 선거 막판이라 저의를 의심받긴 했지만 시도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중에서도 위성정당 방지에 기초한 국회의원 비례대표제 확대, 대통령 결선투표제, 지방선거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확대는 서둘러 입법을 논의하거나 실행할 만하다.

우선 민주당이 약속을 실행에 옮기는 데 적극적이어야 한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장 지자체에서 조례로 정할 수 있는 선거구별 당선인 수 확대가 개혁의 진정성을 확인할 시금석이 될 것이다.

선거법 개정이 불가피한 만큼 곧 여당이 될 국민의힘의 협조도 필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민의힘이 정치개혁의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국민의힘은 전신인 자유한국당 시절 민주당이 국민의당, 정의당 등과 손잡고 어렵사리 추진한 연동형비례대표제 개혁을 막았다. 그것도 모자라 자기들은 선거제 개혁에 찬성하지 않았으니 위성정당 만든 건 문제없고 그에 대응하느라 민주당이 위성정당 만든 건 사과하라고 큰소리까지 친다. 오죽했으면 지난 대선 토론에서 이런 말싸움이 벌어지자 심 후보가 "위성정당 문제는 국민의힘에서 시작한 게 맞습니다"라고 했을까.

최근 여론조사에서 새 정부가 고려할 개혁 과제로 정치개혁을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 대선 기간 내내 국민이 자신을 부르고 키웠다며 국민만 보고 달려가겠다던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이 공약집에서 정치개혁 약속한 적 없었다는 꼼수로 개혁 민심에 역행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범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