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윌리엄스(윌 스미스)는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태어났다. 가난과 씨름해야 했고, 백인우월주의단체 KKK의 폭력에 맞서야 했다. 뭔가 제대로 배울 기회가 그에겐 없었다. 빈곤은 대물림 됐다. 리처드는 캘리포니아주 컴튼에 정착한다. 미국에서 가난하기로 소문난 곳으로 범죄가 들끓었다. 리처드는 어느 날 한 테니스 선수가 우승 상금으로 4,000달러를 가져가는 모습을 본다. 자신의 연봉보다 많은 돈이었다. 그는 78쪽에 달하는, 테니스 챔피언 육성 계획을 세운다. 2년 후 딸 둘이 차례로 태어나고,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두 딸은 비너스(사니야 시드니)·세리나(데미 싱글턴) 윌리엄스다. 자매는 자라서 테니스 4대 메이저 대회 단식에서만도 30차례나 우승한다.
테니스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해선 재력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코치에게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야 해서다. 프로 대회에 서는 흑인 선수가 드문 이유다. 가난뱅이 리처드가 믿을 건 독학과 철저한 계획, 딸들의 재능뿐이다. 리처드는 꽉 짜인 일정에 따라 아이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킨다. 그가 훈련 전 코트에 내건 문구는 ‘계획 없는 삶엔 실패만 있을 뿐(If you fail to plan, you plan to fail)'이다. 리처드는 허름한 상가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틈을 내 유명 코치를 찾아 다닌다. 딸들이 특출하니 공짜로 지도해달라고 부탁한다. 리처드는 거부당하면서도 꿈을 놓지 않는다. 영화 ‘킹 리차드’는 불굴의 집념으로 꿈을 일궈낸 리처드의 삶을 돌아본다.
누구나 계획이 있다. 하지만 현실 앞에서 계획은 흐트러지거나 무너지기 마련이다. 리처드와 그의 가족을 둘러싼 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리처드 주변에는 갱들이 어슬렁거린다. 다섯 자매가 한 방을 같이 써야 할 정도로 가난에 시달린다. 리처드와 아내 오라신(언자누 엘리스)은 사랑과 독려로 불우한 처지를 극복하려 한다. 무엇보다 리처드의 강한 의지가 시련을 이겨내도록 한다. 그는 딸들에게 말하곤 한다. “세상은 날 무시했지만 너희는 달라. 존경 받을 거야.” 훈련에 지친 딸들을 다독이는 말이면서도 자신을 향한 주문이다.
리처드는 자녀의 물질적 성공만 바라는 극성스러운 아버지일까. 그는 맹목적으로 돈을 쫓지 않는다. 아이들의 인성을 우선 생각하고, 흑인의 정체성을 고려한다. 비너스와 세리나가 10대 초반에 주니어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영입 경쟁이 치열해진다. 전담 코치들은 실력 향상을 위해(실상은 몸값을 올리기 위해) 대회 출전을 계속하자고 하나 리처드는 반대한다. 아이들이 너무 일찌감치 승부의 세계에 매몰되면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공부할 시간을 뺏긴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코치들은 리처드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
영화는 리처드의 지휘로 비너스와 세리나가 정상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을 유려하게 그린다. 리처드의 고뇌와 가족들의 소소한 갈등 사이 박진감 넘치는 테니스 경기가 끼어든다. 이미 알려진 이야기이나 쏠쏠한 재미가 있다. 영화는 리처드의 언행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리처드의 생각에 동조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오라신의 헌신, 아버지의 엄격한 지도 속에서도 자기 방식대로 삶을 개척하려는 딸들의 모습을 함께 비춘다. 비너스·세리나 자매의 대성이 리처드의 공만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이 영화의 미덕 중 하나다.
윌 스미스의 연기는 단연 눈에 띈다. 코미디에 일가견이 있던 그는 얼굴에 웃음기를 빼고, 자신의 신념과 의지에 따라 세상을 바꾸려는 진지한 중년 남자로 변한다. 그는 올해 골든글로브상, 미국배우조합(SAG)상, 영국 아카데미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가져갔다. 27일 오후(현지시간) 열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라있다. 이변이 없는 한 오스카 트로피는 그의 것이다. 영화는 남우주연상 이외에도 작품상과 여우조연상, 각본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지명됐다. 2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