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정치 참여를 결심한 데는 ‘서초동 그룹’으로 불리는 대학 동창과 법조계 인맥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이들이 정치권에 선을 대 검사 출신 ‘윤핵관’이 생겼고, 이어 국민의힘 지지 세력이 형성됐다. 여기에 범정치권 원로들과 전문가 그룹이 힘을 보탰다. 크게 보면 네댓 개 세력이 ‘윤석열 대통령’을 만든 공신들인 셈이다.
거사가 끝나면 전리품 나누기는 당연지사다. 개중에는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 윤석열을 지원한 이들도 있겠지만 보험 들 듯이 뛰어든 이들이 더 많다. 그러니 죽기 살기로 후보를 도운 마당에 잿밥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연할 터다. 벌써부터 당선인 주변에서 자리를 놓고 물밑 힘겨루기가 뜨겁다는 얘기가 들린다.
창업공신들 간 권력 다툼의 첫 경연장은 정권인수위다. 새 정부 국정의 얼개와 방향, 초대 내각 인선 등이 정해지는 가장 ‘큰판’이라서다. 권력의 보증수표인 인수위원 타이틀을 따내려는 로비가 치열하다고 한다. 그뿐이랴. 앞으로 당선인을 중심으로 권력의 동심원이 차례로 그려지는 과정에서 펼쳐질 암투는 처절할 것이다.
그 생생한 장면을 ‘이명박 인수위’ 실세였던 고 정두언 의원이 토로한 적이 있다. MB 대통령 취임식 날에 맞춰 작심한 듯 공신들 간 자리 다툼의 실상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띄웠다. “대선 뒤처리 중 제일 크고 힘든 일이 선거에서 ‘고생한 사람들에 대한 처우’ 문제다. 한마디로 말하면 고통 그 자체다. 오죽하면 낙선한 측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까. 지금 진행되는 정부 인선이나 공천은 참으로 아슬아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윤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정치 신인이기에 누구에게도 빚진 게 없고 어떤 패거리도 없다”고 누누이 말했다. ‘보은 인사’로 자리를 챙겨주거나 하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자신이 정치를 잘 모르니 핵심 자리에 능력 있는 전문가들을 배치하겠다고도 했다. 약속이 지켜진다면 이전 정권에서 번번이 빚어진 인사 실패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다짐은 미덥지 않다.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 취임 후 첫 인사에서 특수통 검사들을 대거 요직에 앉혔다. 그는 능력에 따른 인사였다고 하나 자신을 잘 따르는 후배들을 챙겼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서초동 검찰 주변에선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는 특수부 검사 인맥을 중심으로 검찰의 권력 교체가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가 돈다.
‘윤핵관’ 논란도 따지고 보면 과도한 애정을 숨김없이 표시한 데서 비롯됐다. 국민 앞에서 “처음 정치에 발을 들여놓아 아무것도 모를 때 가르쳐주고 이끌어준 사람”이라고 칭찬하면 거기에 줄을 서라는 신호 아닌가. 그러니 대놓고 “윤핵관이 자랑스럽다”는 사람도 나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캠코더’ 인사와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ㆍ강부자’ 인사, 박근혜 정부에서의 ‘수첩 인사’의 문제점은 자신들에게 충성하고 헌신한 측근과 공신들을 표나게 챙긴 것이다. 그들이 예뻐서 떡 하나 더 줬을 뿐이겠지만 조직이 망가지고 유능한 인재가 떠나고, 민심이 멀어지는 단초가 됐다.
이번 선거에서 윤 당선인 명의로 뿌려진 임명장만 수만 장이고, 특보란 감투를 쓴 이들도 부지기수다. 머잖아 이들은 저마다 자리 하나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쌓아 올린 권력이 밑동부터 흔들리는데 정작 리더는 그걸 모른다.
문재인의 그림자로 불리던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은 대통령 당선과 함께 “제 역할은 딱 여기까지”라며 퇴장했다. 그런 것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적어도 실세임을 내세워 호가호위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더 바라자면 윤 당선인이 측근과 공신을 내치는 것이다. 자신의 팔다리를 자르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느껴야 나라와 국민이 똑바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