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대선에서 지고도 ‘복기’를 잘못하고 있다.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결과’보다 0.73%포인트 차의 접전 ‘과정’에 안주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패배의 원인을 진단하는 토론은 실종됐고, 비상대책위원장 자리를 두고 책임 공방이 거세다. 선거 기여자를 포상하는 논공행상도 추진된다. n번방 추적단 ‘불꽃’ 출신의 박지현 활동가가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지만, 권력형 성폭력 가해자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 부친 빈소엔 문재인 대통령을 필두로 화환과 조문이 이어졌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에 취해 쇄신의 방향성을 종잡을 수 없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민주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6ㆍ1 지방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하지만 누가 ‘운전대’를 잡을지를 놓고 여진이 지속되고 있다. 김두관 의원은 13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선거 패배의 책임을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에 돌리며 “비대위원장을 사퇴하고 이재명이 지방선거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 뽑을 원내대표가 비대위를 꾸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낙연계인 양기대 의원은 “윤호중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는 건 당의 쇄신과 변화를 요구하는 당원의 뜻에 역행한다”고 했고, 정춘숙 의원도 같은 의견을 냈다. 물론 ‘네 탓 공방’을 그만하라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이런저런 논쟁은 결국 갈등으로 번질 태세다. 안민석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후보의 역할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신중해야 할 것”이라며 이재명 비대위원장론을 반박했다. 호남 지역 한 의원도 통화에서 “패배한 대선후보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전례가 있었느냐”며 “김두관 의원은 자기 정치만 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선거 기여자들에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계획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민주당은 최근 각 지역위원장에게 18일까지 대선 ‘특별공로’ 포상 대상자를 추천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성과를 낸 당원에게 ‘지방선거 공천에서 가산점을 준다’는 대선 전 약속을 지키는 차원이지만, 당장은 내 편 챙기기보다 철저한 자기 반성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많다.
민주당 소속 자치단체장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을 두고 가해자를 감싸는 ‘내로남불’ 행태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안 전 지사가 2020년 모친상을 당하자 빈소에 화환을 보냈는데, 8일 부친상에 또 화환을 보냈다. 윤 비대위원장 역시 원내대표 명의로 화환을 보냈고, 이원욱ㆍ조승래 의원 등 안 전 지사와 가까운 의원들은 10일 직접 조문했다.
이 전 후보는 앞서 2일 TV토론에서 민주당 인사들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을 겨냥해 “이런 일이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면서 고개를 숙였지만, 선거 후 당 주류 인사들의 공개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박 공동비대위원장과 이탄희 의원이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겠다”며 ‘대리 사과’한 게 고작이다. 윤 비대위원장은 13일 기자회견에서도 빈소 화환 논란과 관련, “유교사회다 보니 미처 생각하지 못한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답했을 뿐,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