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5년 전이 떠올랐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민을 거론했고 통합하겠다고 했다. 언론과의 소통도 약속했다. 하지만 그 뒤 통합은커녕 국민 소통도 없었다. 상황이 엄중했다고 이유를 대겠지만 문 대통령은 그만큼 여유가 없었다. 문 대통령과 달리 윤 당선인은 느긋했다. 역대 최소 표차 승리에 대한 질문에는 “투표 결과 다 잊었다”고 했다. 0.73%의 경고를 무시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믿고 맡겨달라’는 다짐으로 들렸다.
하지만 윤 당선인을 바라보는 국민은 걱정이 많다. 평생 검사로 살면서 현실인식이 부족한 정치 아웃사이더가 미덥지 않고 국회권력을 장악한 민주당 앞에서 자칫 식물대통령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주변에서는 ‘6개월 안에 촛불과 탄핵이 재연될 것’이라는 험한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당선인이 선거운동 중에 “탄핵할 테면 하라”고 결기를 보였지만 그런 국정파탄을 기대할 국민은 어디에도 없다. 쏟아지는 우려와 주문은 ‘부디 통합과 협치로 국정을 안정시켜 달라’는 국민적 염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국민이 ‘0선 의원’을 국정운영 지도자로 채용한 이유는 분명하다. 과거 대통령을 답습하지 말고 새로운 정치를 보여달라는 요구다. 탄핵의 길을 열었던 국정농단 수사 검사를 문재인 정부 심판자로 뽑은 이유도 다르지 않다. 박근혜 정부의 불통과 무능은 물론 문재인 정부의 오만과 독선을 모두 극복하라는 주문이다. 탄핵과 조국의 강을 건너 국민을 통합할 적임자로 윤 당선인이 낙점을 받은 것이다.
통합과 협치의 출발은 반면교사다. 정권교체론에 힘입어 집권한 만큼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부동산 및 고용 정책을 바로잡아 집값이나 청년 실업 걱정을 없애야 하고 ‘닥치고 탈원전’ 정책도 현실성을 재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독선과 오만에 빠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탄핵의 소용돌이 속에서 문재인 정부는 균형감을 잃었다. 21대 총선에서 절대 의석을 차지한 뒤로 민주당의 독주는 더욱 심해졌고 청와대에는 인의 장막이 드리워졌다. 실패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 모두가 ‘나만 옳다’는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보복의 칼을 빼드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윤 당선인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민주당 정부의 기반인 586운동권을 ‘오로지 권력연장, 집권, 이권 나눠먹기에만 몰두하는 세력’으로 규정하고 심판의 대상에 올렸다. 중앙일보 인터뷰에서는 “민주당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나,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도 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당선인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의 부활을 거론하면서 사정정국과 검찰공화국을 걱정하고 있다. 월성 원전수사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등을 겨냥한 정치보복 수사가 현실화한다면 국정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당선인 말대로 사법 시스템에 맡겨두면 될 일이지 보복의 도구인 과거사위원회를 동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당선인은 더 이상 검찰총장이나 검사가 아니라 국정운영의 최고책임자다. 수사는 검찰과 경찰, 공수처에 맡기고 국민 전체의 미래와 안위를 신경 써야 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공동으로 발표한 단일화 선언문에서도 미래 정부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적폐 청산과 퇴행적 국정운영이 아니라 미래를 대비하는 국정과제를 실행하겠다”고 한 다짐을 되새기기 바란다. 윤석열 정부에서 또다시 진영논리를 따지고 정책 결정에서 특정 집단을 우대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