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오일머니'가 K게임에 홀렸다. '탈석유'를 준비하는 사우디가 미래 신산업 분야로 게임을 점찍고, 넥슨과 엔씨소프트 지분 확보에만 3조 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부었다.
11일 게임 업계에 따르면 사우디 국부펀드인 '퍼블릭 인베스트먼트 펀드(PIF)'는 전날 엔씨소프트 주식 56만3,566주(지분율 2.57%)를 약 2,904억 원에 추가 취득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다트)을 보면 PIF는 지난달 9~16일에도 총 6회에 걸쳐 엔씨소프트 주식을 매수했다.
이로써 PIF는 기존에 확보한 6.69%에 더해 총 9.26%(203만2,411주)의 지분을 확보했다. 지분 가치는 현 시가 기준 9,100억 원에 이른다. 단번에 넷마블(8.9%)과 국민연금공단(8.4%)을 제치고 엔씨소프트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엔씨소프트 1대 주주는 지분 11.9%를 보유한 김택진 대표다.
PIF가 보유한 한국 게임사 주식은 엔씨소프트에 그치지 않는다. PIF는 지난 1월부터 이달까지 일본 증시에 상장된 넥슨 주식 7.09%를 매입해 4대 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PIF가 넥슨에 쏟아부은 돈만 1,970억 엔(약 2조 원)에 달한다. 국내 대표 게임사로 불리는 '3N(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 중 2개 업체에 3조 원을 투입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사우디가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 글로벌 게임 분야 투자를 늘려가는 가운데 국내 게임사도 사정권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우디는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 집권 이후 이미지 쇄신을 위해 개혁·개방 조치를 이어가는 중인데, 탈석유를 위한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PIF는 빈 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사우디의 국부 펀드다. 5,000억 달러(약 617조 원) 규모의 기금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블룸버그에 따르면 PIF는 2020년 일본 게임사 SNK를 인수한 후 지난해 미국 게임개발사 액티비전 블리자드와 일렉트로닉 아츠(EA), 일본 캡콤 등에 대한 대규모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블룸버그는 PIF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및 신재생에너지 기업 등의 주식 매입에 100억 달러(약 12조 원)의 자금을 배정했다고 보도했다.
업계에선 PIF가 K게임에도 투자하는 것에 대해 현재 국내 게임사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메타버스와 대체불가능토큰(NFT)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온라인 게임에서 강세를 보인 한국 게임의 성장가능성에 대한 평가도 덩달아 올라갔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PIF의 경우 투자 성격이 강한 데다 경영권을 위협할 정도의 지분율은 아니다"며 "국내 게임사 입장에서도 사우디의 관심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