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유학 중인 나이지리아 출신 에마뉘엘 오예델레와 일행 3명은 4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독일 베를린에 도착했다. 탈출은 쉽지 않았다. 폴란드 국경에서 유색 인종은 통과시켜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이들은 밤새 걷고 기차를 옮겨 타며 헝가리를 거쳐 독일로 들어왔다. 마침내 베를린 중앙역에 도착했을 때 아무 대가 없이 이들에게 4월까지 거처를 제공하겠다는 사업가 크리스티안 폴만을 만났다. 폴만은 "어떻게든 피란민들을 돕고 싶었다"며 "이들이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기뻤다"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이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따뜻한 둥지가 되고 있다. 8일 AP통신에 따르면 베를린 중앙역은 지난주부터 우크라이나에서 온 피란민들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하려는 수백 명의 시민으로 가득하다. 이들은 종이에 ‘아이 2명, 어른 2명 숙식 제공 가능’, ‘여성 1명, 1주일 동안 거주 가능’ 등 자신의 집에 머물 수 있는 인원과 기간 등을 적어 피란민들이 볼 수 있도록 플랫폼 앞에 들고 서 있다. 독일어를 알아듣지 못할까 봐 사람 모양의 그림을 그려놓거나 우크라이나어를 병기한 경우도 있다.
베를린 중앙역의 역사 한 층은 전체가 임시 난민 환영센터로 꾸며졌다. 전국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은 피란민을 위해 식료품과 위생용품, 옷, 아기들을 위한 이유식까지 마련해뒀다. 역 곳곳엔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어로 만든 표지판도 세웠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달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시작된 후 이미 200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인이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 등으로 출국했다. 독일 베를린에는 4일부터 매일 1만 명이 넘는 피란민이 기차를 타고 도착하고 있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내무장관들은 이들의 망명 신청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3일 즉각적인 임시보호를 승인했다.
독일인들의 환대는 이들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저지른 전쟁범죄의 '성공적인 속죄'라는 평가도 나온다. 러시아가 점령한 헤르손에서 베를린으로 피란 온 디마 코르니는 자신의 증조할아버지가 1945년 소련군으로 참전해 베를린에서 나치와 싸우다 전사했다고 밝히며 "역사의 아이러니다. 독일인들은 확실히 바뀌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독일 내무부에 따르면 독일은 시리아 내전이 격화한 2015년에도 110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받아들였다.
다만 지금까지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정부 지원 등으로 난민들의 거처를 마련했지만, 장기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는 베를린으로 대부분의 난민이 몰리며 자원이 부족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카 기파이 베를린 시장은 5일 "이 속도로는 곧 베를린이 (난민) 수용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며 독일 전역에 난민을 분산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