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해결책...답은 아파트 아닌 '동네'에 있다

입력
2022.03.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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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기범 국토부 건축문화경관과 과장


5·23 주택가격 안정대책, 10·29 주택시장 안정종합대책, 9·21 수도권 주택공급계획, 5·11 수도권 주택공급 강화방안, 2·4 주택공급대책…

지난 한 해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대책이다. 이번 정부만이 아니다. ‘집값 안정’, 좀더 정확히는 ‘아파트 가격 안정’은 모든 정부에서 가장 총력을 기울여 온 과제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살 집을 찾아 헤맨다.

박기범 국토교통부 건축문화경관과 과장은 “아파트 가격 안정화에 초점을 맞춘 주택정책이 아닌 어떤 공간에 거주할지 고민을 담은 주거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해법은 다름 아닌 우리 곁의 중간주택과 중간주택이 모여 있는 동네에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그가 펴낸 책 ‘동네에 답이 있다’는 이 같은 고민을 한 권에 담아낸 결과물이다. 지난달 25일 서울 통의동에서 만난 그는 "국민을 아파트 공화국에서 탈출시키려면 아파트가 아닌 다른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직 공무원이 정부 정책과 관련된 책을 쓰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중간주택’과 ‘동네’는 부처에 몸담기 이전부터 박 과장이 천착해왔던 주제다. 박 과장은 서울시립대와 대학원에서 건축학과 도시설계를 공부하고 서울의 중간주택 변천에 관한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간주택’ 역시 그가 제안한 명칭이다.


“중간주택이란 단독주택과 아파트단지 사이에 있는 규모와 가격 측면에서 ‘중간’에 있는 주택을 의미해요. 통상 우리가 ‘빌라’라고 부르는 것들이죠. ‘빌라’가 사실 대기업들이 연립주택을 공급하며 고급화 전략의 일종으로 만들어낸 정체 불명의 단어거든요. 마케팅 용어인 ‘빌라’나 ‘원룸’ 대신 해당 주택의 특징을 반영하면서도 유행을 타지 않는 ‘중간주택’을 쓰자는 겁니다.”

박 과장이 ‘아파트’가 아닌 ‘중간주택’이 부동산 문제의 해법이라고 보는 데는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 “지금 부동산 시장은 아파트가 독과점인 시장이에요. 다들 아파트만 쳐다보고 있으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갈 수가 없죠. 그런데 서울시만 하더라도 아파트 면적보다 중간주택 면적이 더 넓거든요. 그걸 활용하자는 거죠.”

이쯤에서 당연히 드는 의문, 같은 면적의 토지라면 아파트를 짓는 것이 중간주택보다 공급 관점에서는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박 과장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단호히 말했다.


“아파트가 용적률(건물 연면적을 땅의 넓이로 나눈 비율)이 높아서 더 효율적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핵심은 ‘건폐율(전체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면적의 비율)’에 있어요. 유럽 국가처럼 중정형 집합주택을 건설하면 용적률을 높이면서도 도시 경관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주택을 지을 수 있어요. 나아가, 이제는 양적 확대에 치중한 ‘용적률 게임’에서 벗어나 주거의 질적 향상을 추구할 정책과 제도를 준비할 때가 됐어요.”

무엇보다 박 과장은 1인가구와 청년층을 위해서라도 중간주택이 더 활성화돼야 한다고 본다. “2020년 서울시의 1인 가구 비율이 33.1%예요. 그중 밀레니얼에 해당하는 20~30대 비율이 47.8%에 달하죠. 서울시에 혼자 사는 밀레니얼을 위한 집이 절실한데, 소형 아파트 공급량은 턱없이 모자라요. 이들을 위한 주거 형태가 중간주택일 수 있는 거죠.”

중간주택 활성화를 위한 현실적인 제안이 가로주택정비사업과 같은 소규모주택정비사업이다. 노후·불량 건축물이 밀집한 주거지에서 종전 가로체계를 유지하면서 블록 단위로 정비사업을 유도하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재개발이나 재건축과 같은 대규모 정비 사업에 비해 절차도 간소하고 2~3년 안에 사업을 완료할 수 있다. 노후한 중간주택을 모두 밀어버리고 아파트 단지로 개발하는 대신 동네의 정체성은 살리면서도 더 나은 거주 환경을 만드는 방식이다.


박 과장은 “아파트가 아닌 중간주택에 주목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할 것인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단지형 아파트의 특징이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를 형성한다는 거예요. 일종의 섬에서 끼리끼리만 살게 되는 거죠. 게다가 일하는 곳까지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니 도시 교통도 유발하고요. 하지만 근린생활 시설이 섞여 있고 골목이 있어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중간주택은 지역공동체를 이뤄 함께 사는 경험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함께 어울려 사는 길이 우리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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