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취업이나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패턴이 있다. 기업의 채용 공고를 보고 채용 포털 '잡플래닛'에서 해당 기업의 평가와 평점을 본다. 잡플래닛이 지원 결정을 위한 마지막 단계인 셈이다.
그만큼 잡플래닛에는 직원들의 솔직한 평가와 평점 등 기업 정보가 넘쳐난다. 2013년 설립 이래 10년간 축적된 기업 정보 750만 건, 월평균 페이지 조회수(PV)가 1억7,500만 건에 이른다. 한마디로 국내 기업의 취업 정보가 모두 모인 채용 분야의 '네이버'다.
그런데 잡플래닛을 운영하는 신생기업(스타트업) 브레인커머스의 황희승(38) 대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10일부터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한다. 자체 엄선한 우수 기업들의 채용 정보를 골라 제공하는 일종의 프리미엄 서비스다. 서울 세종대로의 한국일보사에서 황 대표를 만나 신규 서비스와 잡플래닛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유망한 기업을 찾아 세상에 알리는 발견자 역할이죠." 황 대표에게 브레인커머스가 어떤 회사인지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국내 50만 개 기업 중 알려진 회사는 얼마 되지 않아요. 비록 유명하지 않지만 유망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이 많아요. 이들을 찾아내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기업 발견의 첨병 역할을 하는 곳이 황 대표가 운영하는 잡플래닛이다. 무려 450만 명의 개인 회원을 보유한 잡플래닛은 30만 개 이상의 기업 정보를 갖고 있다. 대부분의 국내 기업 정보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잡플래닛의 인기 비결은 해당 기업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익명으로 올린 깨알 같은 기업 정보다. 야근 빈도, 연봉 수준, 면접 때 물어보는 질문들과 복지 제도 등 취업 또는 이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온갖 정보를 제공한다.
이런 정보들을 잡플래닛에서 보는 이유는 기업들이 공개하지 않는 근무 환경과 단점까지 직원들의 익명 리뷰에 솔직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업들은 리뷰에 민감하다. "리뷰는 잡플래닛 내부에서 심사해 공개해요. 욕설과 명예훼손, 개인 정보가 노출된 내용을 걸러 내죠. 기업들도 문제를 발견하면 신고 버튼을 눌러 심사를 신청할 수 있어요. 그러면 내부 변호사들이 만든 기준에 따라 적법성 여부를 검토하죠."
잡플래닛은 리뷰 작성자가 실제 직원인지 두 단계로 확인한다. "작성자의 메일 주소와 인공지능(AI) 로봇이 다른 직원들이 쓴 리뷰와 비교해 비슷한 맥락을 확인하죠. 개인정보 노출 우려가 있어 명함을 사진 찍어 보내라고 요구하지 않아요."
구직자와 기업들이 잡플래닛에서 가장 민감하게 보는 부분은 기업 평점이다. 직원들이 부여하는 평점은 기업 전체 평점과 일과 생활의 균형(워라밸), 업무 환경, 경력 관리, 리더십, 대표에 대한 지지도, 타인에게 추천할 만한 기업인지를 묻는 평점 등 다양하게 세분화돼 있다.
5점 만점 평점에서 3.0 이상 받으면 좋은 회사로 평가된다. 그만큼 직원들에게 3.0 이상 받기 힘들다. 브레인커머스의 평점은 3.4다. "구직자들 사이에 평점 2.5 미만 회사는 거르고 3.0 이상이면 좋은 회사, 4.0 이상이면 신의 직장으로 꼽히죠."
최근 잡플래닛은 평점 기준으로 올해 주목할 만한 기업 20곳을 발표했다. 1위는 뜻밖에도 대기업을 모두 제치고 의료 AI 스타트업 루닛이 차지했다. 2위도 아파트 관리 플랫폼 스타트업 살다였으며 3위는 한국중부발전이다. 20위 안에 든 대기업 계열은 네이버웹툰뿐이고 구글코리아, 라이엇게임즈코리아 등 외국계 기업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전력기술, 한국수력원자력 등 공기업과 공공기관들이 대부분이었다.
잡플래닛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직장인은 재직하는 기업에 대한 리뷰를 써야 다른 사람의 리뷰를 무료로 볼 수 있다. 리뷰를 쓰기 싫으면 월 4,000~1만4,900원으로 세분화된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직장 리뷰를 쓸 수 없는 대학생들은 학교 메일로 인증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요. 고졸자들은 따로 지원제도가 없어서 유료로 이용해야 합니다."
기업들은 홍보 기회를 제공하는 브랜딩 서비스를 유료로 이용한다. "스타트업은 월 20만 원, 대기업은 월 100만 원을 받아요. 유명 대기업은 이용자들이 많아서 트래픽을 많이 차지해 더 받죠."
이와 함께 브레인커머스는 터닝포인트에이치알과 웨이메이커 등 두 개의 인력채용 전문업체(헤드헌터)를 운영한다. "고급 인력 채용을 위한 전문가들이 있는 자회사들이죠."
황 대표는 구체적 숫자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약 80% 성장했다"고 밝혔다. "영업이익도 2020년 적자에서 지난해 흑자로 돌아섰어요. 2020년 적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기업 채용이 줄면서 감소했죠. 올해도 지난 1월에 월별 매출이 역대 최고를 기록한 만큼 흑자 달성이 무난할 겁니다."
10일부터 시작하는 신규 서비스는 이용자들에게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프리미엄 채용 서비스다. "직군별로 경쟁력 있는 우수 기업들만 골라 채용 정보를 모아 놓은 섹션을 10일 개설 예정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지원 기준에 맞는 기업들을 쉽게 찾을 수 있죠. 대기업 위주로만 올리지 않고 중소 중견기업과 스타트업을 많이 소개할 겁니다."
우수 기업의 선별 기준은 잡플래닛 평점과 키워드다. "평점 3.0 이상 기업들 가운데 직원들이 올린 후기에 성희롱, 성차별 등 문제 키워드들이 존재하지 않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명망보다 얼마나 직원들을 배려하는지를 선별 기준으로 보죠."
이를 통해 황 대표가 겨냥하는 것은 기업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꾸는 "인본주의 채용 서비스"를 하겠다는 것이다. 기업 줄 세우기라는 비판을 들을 수 있지만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다. "과거의 기업 경쟁력은 매출과 브랜드 등 외부 요인들에 집중됐죠. 그러나 요즘 같은 지식중심 사회에서는 사람이 무기죠. 곧 직원들이 만족할 만한 기업이 장기 경쟁력을 갖게 돼요. 그러려면 기업들은 직원들이 최대한 능력 발휘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잘 해줘야 합니다."
황 대표에게 잡플래닛을 통해 이루려는 목표를 묻자 곧바로 "사회를 바꾸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잡플래닛이 채용 시장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메기가 되기를 원해요. 더 좋은 기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경영자들이 늘어나도록 견제 역할을 해야죠."
이를 위해 그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회사는 공정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잡플래닛에서 답을 찾아 보기를 원한다. "월급과 간식 많이 준다고 평점이 올라가지 않아요. 좋은 기업이 되기 위한 핵심은 직원들 사이에 소통이 잘 되고 적절한 평가 보상이 투명하고 공평하게 이뤄지는가에 달려 있어요. 곧 기회의 공정이 중요합니다. 어떤 기업들은 이를 모르고 엉뚱한 곳에 투자하며 직함 대신 이름을 부르는 등 겉치레만 신경 쓰죠."
이런 생각은 황 대표의 아픈 경험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초 대기업들에서 직원들을 많이 데려갔어요. 그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했죠."
그가 찾아낸 답은 역시 투명과 공정이다. "매출과 비용, 트래픽 등을 전체 직원에게 공개하며 최대한 투명하게 경영하려고 노력해요. 또 직원들 대상으로 평가 보상이 공평했는지, 회사 문화와 경영 정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설문 조사를 자주 하죠. 조사 결과를 전체 회의 때 발표하고 경영에 반영해요. 특히 경영진 질책 내용을 유심히 봐요. 그 결과 지난 6개월 동안 이직자가 단 한 명에 그쳤어요."
잡플래닛은 지난해 10월부터 특이하게 모든 직원이 가상공간인 메타버스에서 근무한다. 서울 테헤란로에 사무실이 있지만 출근하는 직원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직원들이 코로나19 걱정 없이 일하기를 원해서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으로 일터를 옮겼죠. 재택근무해도 성과가 떨어지지 않고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요. 저는 집에 돌 지난 아기가 있어서 재택근무가 오히려 힘들어요. 일주일에 4, 5일 출근하죠. 사무실에 나와서도 게더타운에 접속해 일해요."
메타버스 근무는 의외로 비용이 더 든다. "사무실을 유지하며 메타버스 근무를 하면 부대 비용이 더 들어요. 재택근무용 소프트웨어 등 협업도구를 새로 도입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죠."
하지만 메타버스의 문제는 비용보다 소속감 결여다. "새로 직원을 뽑으면 대면 접촉을 할 수 없어 소속감과 동질감을 심어 주는 데 어려움이 있어요. 이를 해결하려고 직원들 집에 음식을 배달시키고 메타버스에서 모이는 랜선 회식도 하며 노력을 많이 하죠."
그래서 황 대표는 코로나19가 종식돼도 메타버스 근무를 계속할지 고민이다. "알아서 출근하는 자율근무와 메타버스 근무를 놓고 고민 중이죠."
황 대표는 고교 시절 독일에서 공부하고 미국 에머리 대학에서 경제학과 수학을 전공했다. "교수였던 아버지께서 대학을 독일에서 다닌 뒤 미국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하며 양쪽 문화를 경험한 것이 너무 좋다며 권하셔서 저도 그 과정을 밟았어요."
그러나 그는 대학 4학년 때 중퇴하고 소설커머스 업체 베스트플레이로 첫 창업을 했다. 이후 독일기업 로켓인터넷이 아시아에 진출할 때 계열사인 그루폰의 한국 대표를 맡았다. "유학시절 사귄 독일 친구들 소개로 로켓인터넷에 처음 입사한 외국인이자 유일한 아시아인이었죠."
이후 로켓인터넷코리아 대표를 지낸 뒤 2013년 브레인커머스를 창업했다. "게시판 형태로 돌아가는 국내의 채용 서비스가 낙후됐다고 생각해 창업했어요. 그만큼 할 일과 기회가 많다고 봤죠."
그는 채용 시장을 바꾸기 위해 데이터 분석을 중요하게 보고 SK하이닉스에서 일하던 AI 개발자 등 전문가들을 대거 데려왔다. "전체 140명 직원 가운데 개발자가 50명이에요. 여기에 헤드헌터 인력이 70명이죠." 이 같은 잡플래닛의 가능성을 높게 본 알토스벤처스 등 투자업체들은 지금까지 118억 원을 투자했다.
황 대표는 올해부터 증시 상장을 준비한다. "시장 상황이 중요해 세계 경제가 나아지기를 기다리며 내년 이후 상장을 고려 중이죠. 이를 위해 미래에셋을 상장 주관사로 선정했어요.”
그의 꿈은 지금의 회사를 취업 관련 온갖 데이터를 취급하는 정보기술(IT) 회사로 키우는 것이다. "제품이든 서비스든 다양한 리뷰를 찾아 보여주는 검색 엔진도 개발할 생각입니다. 잡플래닛과 별개로 제공할 검색 서비스를 위해 자연어 검색 등 다양한 관련 인력을 뽑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