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기술, 기초과학으로 기반 다진다

입력
2022.03.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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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초연구 투자 40년 '짧은 역사'
그럼에도 '수학 선진국' 인정 등 성과
기초연구 지원 확대... 효과적 운영 필요

대나무는 오랜 기간 뿌리를 내린 후 빠르게 자라는 식물로 유명하다. 대나무를 옮겨 심으면 몇 년간 땅속에 뿌리를 박고 영양분을 저장한다. 비로소 때가 되면 죽순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데, 그 기세가 대단해서 하룻밤에 10㎝ 이상 자라기도 한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 기술은 새로운 싹을 내기 위해 오랜 시간 뿌리를 내리는 대나무처럼 기초연구에 대한 장기적 투자로부터 출발한다. 디지털 시대 필수품인 스마트폰의 무선 통신 기술 원리는 무려 200여 년 전 영국 물리학자인 맥스웰의 전자기파 방정식에서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1977년 한국과학재단을 설립해 기초연구 지원의 기반을 마련했고, 이듬해 ‘일반연구비’ 사업을 추진하며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다.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기초과학진흥 원년을 선포하고 '기초과학연구진흥법'이 제정된 1989년이었다.

미국과 유럽이 200여 년 가까이 기초연구에 투자한 것에 비하면 40년은 긴 기간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국제 수학연맹(IMU)은 우리나라 수학 경쟁력을 최상위 등급으로 승격해 전체 가입국 가운데 최단기간 내에 ‘수학 선진국’으로 인정받았고, 2021년 네이처 인덱스 국가별 연구 성과 순위 10위권 국가 중 유일하게 순위가 상승하는 등 최근 들어 빠른 속도로 괄목할 만한 성과들을 이뤄가고 있다.

정부는 2017년 기초연구지원 확대를 국정과제로 제시하며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해왔고, 2022년에는 2017년 대비 2배 이상인 2조5,500억 원의 기초연구비 목표를 달성했다. 지난 5년간 기초연구 지원 확대로 연구자들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이제는 늘어난 연구비와 지원체계가 효과적으로 운영되기 위한 방향이 제시되어야 한다. 우선, 정부는 연구자 개개인의 자율성과 학문 분야별 다양성을 고려한 기존 지원체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동시에, 기술패권시대에 선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대학 또는 연구소 등 집단 중심으로 연구경쟁력을 강화하도록 기존 지원체계를 보완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대학 약화, 연구인력 부족 등 기존 지원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했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도 보완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의지는 발전적 기초연구 생태계 공고화를 목표로 하는 ‘제5차 기초연구진흥종합계획(2023~2027년)’을 통해 마련될 예정이다.

유엔은 기후변화 등 사회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국제 기초과학의 해’로 지정했다.

기초연구는 땅속 대나무 뿌리처럼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 40여 년간 다져온 기반을 바탕으로 올해가 대한민국 기초연구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하는 도약의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