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흑해 인근이 전쟁의 영향권에 갇히면서 민간 상선들이 떨고 있다. 전쟁 발발 일주일 만에 방글라데시와 에스토니아 상선이 각각 정체불명의 공격을 받거나 침몰했기 때문이다. 상선들은 하루 속히 흑해를 벗어나려 하지만, 바다에 깔린 기뢰 탓에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4일 방글라데시 일간 데일리스타와 외신 등을 종합하면, 지난 2일(현지시간) 오후 9시 우크라이나 올비아항 연안에 정박 중이던 방글라데시 해운공사(BSC) 소유 화물선 '방글라 삼리드디호'가 발사지점이 불명확한 미사일에 맞았다. 선상에 있던 방글라데시인 3등 기관사 한 명은 현장에서 사망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이후 첫 민간 상선 피해다. 피주시 두타 BSC 이사는 사고 직후 "선상에 화재까지 발생했으나 나머지 선원 28명은 예인선을 타고 육지로 무사히 탈출했다"고 밝혔다.
자국민의 피해 상황을 접한 방글라데시 정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방글라데시 해운부는 삼리드디호를 올비아항에 남겨두고 생존 선원부터 폴란드로 먼저 대피시켰다. 향후 이들은 몰디브를 거쳐 방글라데시로 귀환할 예정이다. 앞서 삼리드디호는 지난달 23일 화물 적재를 위해 올비아항에 입항했다. 이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에 선적 계획을 취소하고 공해로 이동을 시도했으나 통관절차 지연으로 항구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4년 크림반도 병합으로 사실상 흑해를 장악 중인 러시아는 정작 우크라이나를 공격 주체로 지목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러시아 해군을 향해 무차별 포격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방글라데시 선박이 피해를 입었다는 취지다. 다만 마수드 빈 모멘 방글라데시 외교장관은 "전쟁은 안갯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누가 공격을 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가 아직 없어 계속 사태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선박이 공격당한 지 하루도 되지 않은 3일, 이번엔 에스토니아 선박이 피해를 입었다. 올비아항 연안에 정박 중이던 '비스타 해운사' 소유 화물선 '헬트호'가 폭발로 침몰한 것이다. 현재 헬트호의 선원 6명은 모두 구조된 것으로 전해졌다. 비스타 해운사의 이고르 일베스 전무는 "배가 기뢰에 부딪혔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면서도 "기뢰의 출처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에스토니아 선박 사고 이후에는 우크라이나가 선공에 나섰다. 우크라이나 해운국은 4일 "(크림반도와 흑해를) 점령하고 있는 군대(러시아군)가 에스토니아 선박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헬트호는 최근 흑해 밖으로 이동하다 러시아 해군에 저지돼 올비아항으로 되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에스토니아는 1991년 독립 이후 2004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연합에 가입한 반(反)러시아 진영 국가다.
연이은 피해에 나토 해운센터는 즉시 '흑해 운항 위험경보'를 발동했다. 나토는 "전쟁으로 인한 기뢰 설치가 증가해 흑해 북서부 지역으로 이동하는 민간 선박의 피해 위험이 높아졌다"며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한 민간 선박의 직간접 피해 보고가 이어지는 만큼, 선박들은 고도의 경계 태세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