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으로 '신냉전' 현실화... 美·유럽 vs 러·中 성적표는?

입력
2022.03.04 10:00
①경솔한 푸틴… ‘노련한 지도자’ 맞나?  
② ‘비겁한 미국’ vs 드러나는 ‘미국 파워’
③들끓는 유럽… 역내질서 재편 
④‘방조범’ 내몰리는 중국

러시아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하면서 국제정세가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다. 러시아의 침공은 냉전 이후 초강대국 미국이 주도해온 국제질서가 러시아와 중국이 힘을 합쳐 미국과 정면 대치하는 구도로 재편될 수 있다. 유럽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 세계 경제도 영향을 받고 있다. '신냉전'이 현실화하는 지금, 개전 일주일을 넘어선 각 주체들의 성적표가 갈리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경솔했고 미국을 향해 비겁하다는 비판이 나오는가 하면, 유럽은 안보지형 변화에 들끓고 중국은 ‘침공 방조범’으로 의심받고 있다.


①경솔했던 푸틴, 전 세계 ‘공공의 적’으로

“성급한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지난 26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가 내놓은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기사 제목이다. 섣부른 오판이 부른 화(禍)일까. 개전(開戰) 일주일을 넘긴 시점에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성적표가 처참한 수준이다.

과거 러시아 제국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며 호기롭게 국경선을 넘었건만, 전장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육ㆍ해ㆍ공군의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속전속결로 침공을 마무리 지을 것이라는 전 세계의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군과 시민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히면서 수도 키이우(키예프) 코 앞에서 발이 묶였다. 러시아군 일부는 식량과 연료 부족 등 병참 문제로 사기가 저하된 상황이라는 보도도 잇따른다.

푸틴 대통령은 전 세계 ‘공공의 적’이 됐다. 중국, 북한 등 몇몇 우호국을 제외한 지구촌 모든 나라가 등을 돌렸다. 실제 전쟁을 일으킨 행위부터, 국제사회의 ‘금기’인 핵 카드를 꺼내 들고 민간인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가한 까닭이다. ‘노련하고 실용적이며 계산적인 교활한 지도자’라는 평가에도 금이 갔다. 국제정세 흐름을 읽지 못한 것은 물론, 달라진 '현대 전쟁' 운용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평가와 함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왔다.

그의 오판은 러시아 몰락을 재촉하는 독화살로 되돌아올 분위기다. 미국 등 서방이 제재 고삐를 연일 바짝 조이면서 내부 경제 붕괴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국민 삶은 팍팍해졌다. 식료품 가격이 연일 치솟는 반면 돈 가치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민심은 식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연일 반전(反戰) 시위가 벌어진다. 정부가 벌써 7,600명에 달하는 시민들을 체포한 가운데, 엘리트층의 분열을 막기 위해 조만간 계엄령을 선포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물론 초반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만큼 상황은 뒤집어질 수 있다. 전쟁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까닭이다. 다만 빠른 시간 내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장기전으로 흐른다면 푸틴 대통령에겐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존 나글 미 육군대학원 객원교수는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서 “전쟁은 푸틴에게 재앙을 가져오는 자충수가 될 위험”을 언급했다.


②러시아에 맞선 ‘큰형님’...“미국이 돌아왔나?”

미국을 향한 시선은 엇갈린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일성으로 내놓은 “미국이 돌아왔다”는 구호는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세계경찰’ 역할을 포기했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처음으로 전면전이 발생한 지금 미국의 뜨뜻미지근함은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일 첫 국정연설에서 전쟁에 놀란 미국인을 향해 "여러분이 알기를 바란다. 우리는 괜찮을 거다, 괜찮을 거다"라며 "미국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과의 충돌에 개입하고 있지 않고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파병불가 방침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단선적으로 보기엔 아직 이르다. 바이든 대통령은 ‘외교 베테랑’의 면모를 잃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EU) 및 앵글로색슨 ‘혈맹’ 영국, 인도-태평양에서 일본과 한국을 대(對)러시아 제재 전선에 동참시킨 것이 한 예다. 각국의 사정은 다르지만 미국이 꺼내 든 반(反) 권위주의 또는 민주주의 국가 ‘단합’에 녹아들게 만든 셈인데, 이런 막후 조정이 25년 만에 열린 2일 유엔 긴급 특별총회에서 러시아규탄 결의안이 압도적 가결되도록 이끌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무엇보다 미국의 세계경제 영향력을 무시하는 세력은 재앙을 각오해야 한다는 점을 각인시키는 중이다. 러시아를 상대로 한 국제송금·결제시스템 ‘스위프트' 제재가 비근한 예다. 무역시장에서 러시아의 팔다리를 잘라 내 숨통을 조이겠다는 의도다. 게다가 ‘침략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처럼(지난달 25일 미 재무부)” 제재 리스트에 올리며 ‘폭군’ 대열에 올렸다.

정보전에서도 미국은 돋보인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이던 지난달 16일을 러시아의 침공 예정일로 공개해 국제사회 대비를 주의환기했다. 시점은 빗나갔지만 미국이 구체적인 날짜를 지목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러시아의 침공 방향을 예측하고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까지 미리 공개한 일련의 대응은 푸틴의 권력 ‘이너서클’ 안에서 의미있는 정보를 빼낼 수 있다는 경고였다. 개전 후에는 러시아군의 이동 상황 등을 우크라이나에 전하면서 효과적 방어에 일조하고 있다는 칭송도 나온다.


③전후 70년 이어온 안보 금기 깼다…들끓는 유럽

“2022년 2월 24일(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일)은 유럽 대륙의 역사에서 역사적 전환점이 됐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달 27일 독일 의회에서 이같이 말하며 ‘유럽 군사강국 회복’을 선포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극도로 신중한 외교안보 정책을 펼쳐온 ‘전범국’ 독일이 외교적 대전환을 알리고 국방강화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것이다.

‘군사적 중립’을 지켜온 북유럽 스웨덴과 핀란드도 오랜 금기를 깨고 우크라이나에 군사장비와 전투식량 등 군사물자를 지원했다. 러시아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가입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와 발트3국(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이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자국이 보유한 대전차 미사일 등 대공 시스템을 우크라이나에 대거 지원하고, 국경을 열며 피란민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넘어가면 이들 국가 역시 ‘도미노 붕괴’ 위협에 노출되는 것이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및 유럽연합(EU) 가입을 적극 지지했다.

유럽 에너지 시장도 뒤집어졌다.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의존도가 절반(43%) 가까이에 달하는 유럽은 그간 대(對)러 경제제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러시아와 천연가스관 ‘노르트스트림’ 사업을 진행 중인 독일은 침공 직전까지 가스관 사업 승인 중단 발표를 머뭇거리다, 침공 직후 에너지 위기를 각오하고 승인 절차를 전면 중단했다. 에너지난이 가시화하면서 유럽 각국은 미국과 호주 등으로부터 에너지 수입을 늘려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안보와 경제 직격탄을 맞은 유럽이 러시아에 맞서 똘똘 뭉치면서 역내 지정학적 질서 변화도 감지된다. 라루카 체르나토니 카네기 유럽센터 선임연구원은 “(서방 동맹이) 유럽방위기금과 나토 확장 등 공동대응 체제를 강화할 것”이라면서 “냉전 이후 평화와 균형을 추구해온 유럽 안보 질서가 국방력에 의존하는 현실 정치로 빠르게 이동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는 독일의 군사강국 부활에 주변국의 오해가 커질 수도 있다.


④“전쟁 알고도 딴청 부렸나”...‘방조범’ 中 책임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둘러싼 '중국 책임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전쟁에 개입한 건 아니지만, 러시아의 공격 계획을 사전에 알고도 사실상 '방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속속 제기되면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일 "중국 정부 고위 관계자가 지난달 초 '베이징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우크라이나 침공을 늦춰 달라'고 러시아에 요구한 정황을 미국과 유럽의 정보 당국이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4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중국 측이 이 같은 요청을 전달했다는 정보는 믿을 만하다"고 NYT는 전했다. 베이징올림픽 폐막 닷새 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중국은 시치미를 떼고 침략자 러시아를 우회적으로 두둔하며 전쟁 우려를 일축해 왔다. 올림픽 기간 중국 외교부는 "전쟁을 부추기는 것은 책임있는 태도가 아니다(2월 15일)", "미국 등 서방이 가짜 뉴스를 유포하고 있다(2월 16일)"고 선을 그었다. 중국이 실제 침공을 사전에 인지했다면 올림픽 축제에 혈안이 돼 전쟁의 비극을 외면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수상한 정황은 또 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지난달 23일 러시아산 밀 수입을 전면 개방했다. 지난해 12월엔 러시아산 천연가스 500억㎥를 몽골을 통해 중국에 공급하는 새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에 합의했다. 서구의 제재에 미리 대비라도 하듯 러시아는 중국과의 식량·에너지 분야 협력에 부쩍 속도를 냈다. 양국이 전쟁에 앞서 교감을 나눴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물론 중국은 전면 부인하고 있다. 류펑위 주미대사관 대변인은 '중국이 러시아의 전쟁 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의혹에 "그런 주장은 근거 없는 추측이며 중국을 비난하고 비방하려는 의도"라고 반박했다.

중국은 되레 우크라이나 사태 책임을 미국에 씌웠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3일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또 다른 베를린 장벽을 세워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미국이 인구 1억4,000만 명의 러시아를 고립시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하다"며 "러시아를 압박할수록 세계의 분열과 적대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경주 기자
김진욱 기자
강지원 기자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