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현지에서 사업 중인 국내 건설사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국제사회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가 강해질수록 대금 결제 통로가 꽉 막혀 예상했던 수주액이나 매출 목표를 못 채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일 국토교통부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국내 건설사가 추진 중인 사업은 총 12개다. 러시아에 9개, 우크라이나에 3개다. 아직까지 현지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의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경제적인 피해는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2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가 오는 12일부터 러시아 은행 7곳과 러시아 내 자회사를 결제망에서 배제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유럽연합(EU)의 대러 제재를 고려한 조치다.
러시아로 돈을 보내거나 받을 방법이 막히게 돼 현지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건설사는 공사 대금을 받는 게 어려워질 수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 수위가 높아질 경우 철수 압박도 커진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러시아의 주거래 은행이 제재 대상에 포함되면 다른 러시아 은행을 경유해 대금을 받는 방법이 있다"며 "만약 다른 은행을 통해 받는 것도 막히면 정말 큰 일"이라고 우려했다.
국내 기업들의 러시아 내 주요 건설 사업은 현대엔지니어링의 오렌부르그 가스 처리시설 설계·조달·시공, 삼성엔지니어링의 발틱 에탄크래커 프로젝트 설계·조달, DL이앤씨의 모스크바 정유공장 현대화 공사 등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건설사들의 러시아 건설 수주액은 17억8,450만 달러(약 2조1,503억 원)다.
대형 건설사 사업장은 그나마 아직 피해가 제한적인 상태다. 삼성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지난달에 수주한 사업이고, 시공이 아닌 설계 업무라 현장 리스크는 없는 상태"라며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현지 상황을 계속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도 "아직 착공 시기를 조율 중이라 큰 영향은 없다"고 했다.
정부는 국내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민관합동 긴급 상황반'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전날 2차 회의에서는 해외건설협회,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제사회의 추가 제재 등 급변하는 상황을 신속히 파악해 공유하고 예상 시나리오별로 대응 계획을 수립해 체계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회의에 참석한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달 23일 1차 회의 때는 초기 단계라 이론적으로 잘 대비해야겠다 정도였다면 2차 회의에선 대금 지급 문제 등이 현실로 다가와 기업들도 심각성을 절감했다"며 "우리 기업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법률 대응을 지원하는 등 지속적으로 긴밀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