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지지한 박근령, 윤석열 손잡은 '깨시연'... 변절이냐 화합이냐

입력
2022.03.0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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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오버' 대선의 배경은 
①이념·정책적 차별성 없고 
②'역대급 비호감' 대선후보 
③초박빙 따른 '묻지마 영입'

'극과 극은 통한다.'

대선이 막바지로 향하면서 보수 성향 인사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지지 선언을 하거나 진보 성향 인사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손을 맞잡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통상적인 좌우 진영을 넘어 지지를 밝히는 '크로스오버(Crossover)' 현상은 이번 대선의 새로운 트렌드 중 하나다. ①이념 및 정책 차별성의 부재 ②후보들의 비호감도 ③초박빙 판세 등이 배경으로 꼽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은 2일 "이번 대선에서 동서통합으로 평화통일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호남 통합 권력을 창출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는 단연코 이재명 후보"라며 지지를 밝히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박 전 이사장은 "통합과 통일은 민심이자 천심"이라며 "유신론의 관념을 갖고 있는 보수가 진보를 포용해야 한다"고도 했다. 박 전 이사장은 이날 민주당 선거대책본부 총괄특보단 고문에 이름을 올렸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의 당내 대선후보 경선 캠프에 속했던 표철수 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은 1일 이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민주당 선대위 언론혁신특보단장으로 합류했다.

정반대 사례들도 있다. 대표적인 '친문재인 단체'로 꼽히는 '깨어있는 시민연대(깨시연)'가 1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윤 후보의 지지를 선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깨시연은 2019년 당시 검찰총장으로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지휘한 윤 후보가 여권과 갈등할 때 같은 장소에서 '조국 수호' 집회를 주도한 단체다. 그랬던 이들의 태도가 180도 달라지면서 "윤 후보에게 졌던 '서초의 빚'을 갚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1일엔 이낙연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예측 불가능한 '괴물 대통령'보다는 차라리 '식물 대통령'을 선택하기로 했다"며 윤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가치·철학보다 감정·이익에 움직이는 대선"

평소 성향과 달리 정반대 진영의 후보를 지지하는 배경에는 그만큼 이번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의 이념 뿐 아니라 정책적 차별성이 흐려졌다는 얘기다. 실제 '양강'인 이 후보와 윤 후보의 공약은 외교·안보 분야를 제외하면 큰 틀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평가가 많다.

후보들의 높은 비호감도는 같은 진영 내에서도 등을 돌리게 하는 요인이다. 보수 진영 일부에선 박 전 대통령에게 칼을 겨눴던 윤 후보를 지지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있고, 2017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저격했던 이 후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강성 친문 지지층이 존재한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를 패배시키기 위해 반대편을 택하는 '네거티브 전략'의 성격이 있다는 점에서 건강한 정치현상으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막판까지 초박빙판세가 나타나면서 한 표가 아쉬운 후보들이 '묻지마 방식'의 지지세력 확보에 목을 매고 있는 것도 '크로스오버'를 부추기고 있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관계자는 "선거에선 썩은 빗자루라도 잡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며 "표를 주겠다고 오는데 지지 성향을 가려서 받을 수 있는 선거캠프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진영을 초월한 화합을 도모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정치권에선 '변절'이라는 시선도 엄존한다. 그때그때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지 선언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인의 변심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라며 "이런 사례가 많은 것은 대선판이 가치와 철학보다는 순간의 감정과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장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