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심판'의 무거운 메시지, 김혜수라 가능했다

입력
2022.03.03 08:34

배우 김혜수가 '소년심판'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도박판의 설계자, 변호사, 조직의 언더보스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웃음과 감동을 선사해왔던 그다. 이러한 김혜수에게 '소년심판'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심판'은 지난달 25일 공개됐다. 10부작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소년범을 혐오하는 판사 심은석(김혜수)이 지방법원 소년부에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는다. 소년범죄와 그들을 담당하는 판사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극은 가정폭력, 성폭행,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과거 뉴스에 등장해 오랜 시간 주목받았던 사건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에피소드도 있다. 소년범들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는 점이 돋보인다. 이들의 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동시에 악한 행동을 하기까지 주변 인물들과 사회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명한다.

'소년심판'의 판사들을 완전무결하다고 보긴 어렵다. 어두운 과거를 갖고 있는 이도, 신념을 위해 옳지 않은 일을 하는 이도 있다. 그럼에도 판사들이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잘못을 반성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좋은 일에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변화'는 많은 캐릭터들이 소년범에게 기대하는 바이기도 하다.

김혜수의 힘 있는 메시지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소년심판'은 지난 1일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부문 전 세계 7위에 올랐다. 이 작품은 공개 이틀 만에 10위권에 입성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혹자는 정상의 자리를 각각 53일, 15일 연속으로 지켰던 '오징어 게임'과 '지금 우리 학교는'에 비해 아쉬운 결과라고 말하지만 숫자가 전부는 아니다.

'소년심판'의 진가는 작품 속 메시지에 있다. 온라인 제작발표회를 찾은 김혜수는 "내가 (소년 범죄에 대해 갖고 있는) 관심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들은 분노, 안타까움에 불과했다. 아주 감정적인 접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년심판'을 통해 우리 사회의 역할이 무엇일지, 소년 범죄와 소년범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어때야 할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다시 한번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의 깊은 생각은 작품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김혜수는 심은석으로 분해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들을 시청자에게도 던졌다.

김혜수의 표정과 말투에는 심은석이 품고 있는 굳은 의지, 믿음, 증오심 등 다양한 감정들이 드러났다. 기부, 환경 운동 등으로 꾸준히 선행을 펼치며 선한 영향력을 보여줬던 그이기에 '소년심판'의 무거운 메시지에 더욱 큰 힘이 실렸다. 시청자들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소년 범죄에 대한 생각을 공유했고, 바람직한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과정에서 심은석을 연기한 김혜수도 여러 차례 언급됐다. 한 네티즌은 "김혜수니까 할 수 있는 배역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김혜수는 '소년심판'으로 필모그래피에 새로운 한 획을 그었다. 드라마 '장희빈' '스타일' '하이에나', 영화 '타짜' '도둑들' '차이나타운'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여러 색깔의 역할들을 소화했던 그는 새 작품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늘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김혜수에게 '인생 캐릭터 경신'이란 말을 쓰긴 다소 민망하다. 다만 '소년심판'이 김혜수에게도, 그의 질문을 들은 시청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선사한 유의미한 작품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정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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