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군함, 흑해 이동 중단시킬 것"… '오락가락' 터키, 뒤늦은 경고 이유는

입력
2022.03.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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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침묵' 터키, 몽트뢰 협약 발동 예고 
反러시아 진영 동조 메시지, 실효성은 의문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터키가 표면적으로 반(反)러시아 진영 가담을 선언했다. 러시아 군함의 흑해 추가 진입을 막아서는 방식이다. 다만 전쟁이 본격화된 상황에서 이뤄진 터키의 뒤늦은 대응은 러시아에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외교적 발언으로 실리는 얻으면서, 러시아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는 얘기다.

2일 터키 관영 아나돌루 통신과 외신 등에 따르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러시아를 향해 "교전국의 군함이 흑해 진입로인 터키의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몽트뢰 협약을 발동하겠다"며 "러시아를 포함 모든 해군 함정은 해협을 통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앞서 전쟁 징후가 짙던 지난달 23일 보드나르 주터키 우크라이나 대사는 "러시아 군함의 흑해 접근을 막아달라"고 황급히 터키 정부에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예상보다 늦은 결정이지만, 우크라이나와 미국은 터키의 협약 발동 소식을 환영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날 "몽트뢰 협약 적용은 우크라이나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며 "우크라이나는 터키의 결정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 역시 같은 날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보장하려는 터키의 움직임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반면 터키가 군사적 실효성이 없는 발언으로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부정적인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1936년 체결된 몽트뢰 협약은 발트해 연안국의 경우 전시 봉쇄조치가 발동되더라도 자국 해군기지로 귀항하는 항공모함 외 군함에 대해선 예외적 통행을 인정하고 있다. 연안국인 러시아는 이미 항공모함보다 규모가 작으면서 핵심 기능이 유지된 항공순양함을 발트해 주력 전함으로 사용하고 있다. 터키가 반대하더라도, 귀항용 군함이라 주장하면 이를 막아설 명분이 없다는 얘기다.

터키 경제외교정책센터의 칸 카사포글루 안보 연구 책임자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장악한 후 우크라이나의 해군 능력은 이미 60%가량 괴멸된 상태"라며 "이미 지난달 초 러시아 군함 6척과 잠수함 1척이 흑해에 배치된 상황이라 해협 폐쇄 결정은 전황에 큰 영항을 미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이난 올젠 터키 전 외교관 또한 "외교적 효과를 제외한다면 이번 결정은 법·군사적 관점에선 러시아에 어떤 타격도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미국의 오랜 우방이자 나토 가입국인 터키는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 이후 러시아와 친분이 급격히 두터워졌다. 내전에 연루된 자국 내 쿠르드족을 반군으로 대하는 터키와 달리, 미국은 내전 당시 쿠르드족과 합동작전을 벌이는 등 이들을 수용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터키는 2017년 러시아제 S-400 미사일을 인수하는 등 기존 친미(親美) 외교 기조를 대대적으로 바꿨다. 현재 미국은 자국 전투기 판매 및 기술이전 금지를 시작으로 터키의 방위산업에 전방위 압력을 가하고 있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