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긴급특별총회에서 소개된 한 러시아군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는 이 발언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했다. 이날 세르히 키슬리차 주유엔 우크라이나 대사는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투입된 러시아 병사가 숨지기 전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낸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회의장에서 낭독했다. 키슬리차 대사의 손엔 숨진 병사의 휴대전화 스크린을 옮긴 팻말이 들려있었다.
병사가 어머니에게 보낸 메시지엔 전쟁의 공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키슬리차 대사가 소개한 문자 메시지 대화 내용이다.
진격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는 러시아 병사는 이런 메시지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어머니에게 알렸다. 자신 역시 무섭고 민간인이 죽어가는 모습에 비통해했다. 군 수뇌부가 젊은 병사들을 전장으로 내몰면서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방도 환영해줄 것이라고 속인 정황도 드러난다. 민간인을 향한 공격에서는 러시아군의 잔혹함도 엿보인다. 전쟁은 그 자체로 누구에게나 비참하고 끔직한 일이라는 점이 이 메시지로 다시 확인된다.
눈시울이 붉어진 키슬리차 대사는 메시지를 보낸 직후 이 러시아 병사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어 키슬리차 대사는 작심한 듯 “벙커에 앉아 있는 누군가가 이 전쟁을 선택했다”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국경을 넘은 러시아 병력은 돈바스 일부와 크림반도를 차지했다”라며 “뭔가 생각나지 않는가, 그렇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신랄한 독설을 쏟아 냈다. “만약 그(푸틴)가 자살하기를 원한다면, 핵무기 창고까지 필요 없다. 그는 1945년 5월 (독일) 베를린 벙커에 있었던 한 남자가 했던 일을 해야만 한다”고 직격했다.
훈련받은 외교관의 발언이라고 보기에는 수위가 높은 키슬리차 대사의 연설은 러시아를 2차대전 시기 나치독일에 빗댄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 전 독일 총통은 2차대전에서 나치독일의 패전이 확실시되자 1945년 5월 베를린 벙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푸틴 대통령이 2차대전에서 나치독일에 맞서 승리한 이른바 ‘소련의 영광’ 부활을 되풀이해 주장하고 있지만, 되레 러시아가 나치가 됐다는 일침이다. 또 최근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위협까지 서슴지 않은 푸틴 대통령에게 히틀러처럼 불행한 최후를 당하기 전에 물러나라는 메시지를 날린 셈이다.
이에 러시아는 반발했다.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하는 것이 아니며 ‘특수 군사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위기의 근원은 우크라이나에 있다”고 책임을 돌렸다. 또 우크라이나가 ‘네오 나치’에 점령당한 국가라며 우크라이나를 깎아내렸다. 하지만 동의하는 참석자는 많지 않았고, 네벤자 대사의 발언은 공허해 보였다. 러시아에 맞서 강력한 리더십을 보이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유대계인 데다가, 그의 증조부 등은 2차대전 시기 소련군으로 참전했다가 나치독일에 의해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날 25년 만에 소집된 유엔 긴급특별총회는 1분간의 묵념으로 시작했다. 모두발언에 나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중단돼야 한다”며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사망을 야기하는 폭력은 전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가 존중돼야 한다고도 했다. 푸틴 대통령의 ‘핵 억지력’을 거론하면서는 “어떤 것도 핵무기 사용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AFP통신은 특별총회에서 발언을 신청한 국가가 100개가 넘는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러시아의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내용의 유엔 결의안은 오는 2일쯤 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