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외교·균형재정' 외치던 독일의 대반전, 군비·에너지에 예산 확대

입력
2022.03.0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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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우크라이나 침공에 영향
평화주의 노선 깨고 군비 증강 선언
러시아 가스 의존 벗어나 재생에너지 혁신 가속
긴축주의 노선 균형재정 원칙도 벗어날 듯


중도, 평화, 균형으로 요약되는 독일 정책 노선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전환점(Zeitenwende)"을 맞았다. 국방 지출을 대거 늘려 독일 연방군을 '대륙 최강군'으로 만들고, 에너지 정책에 있어서는 '푸틴의 화석연료'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로 전력 수요를 100% 충족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국방비 1,000억 유로 일시불... 연간 GDP 2%로 상향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달 27일 독일 의회에서 진행된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러시아 제재, 나토 동맹국 지원과 함께 연방군의 강화와 재생 에너지 개발을 주요 의제로 내세웠다. 숄츠 총리는 이 연설에서 2022년 연방 예산에서 1,000억 유로(약 134조 원)를 일회적으로 지출해 안보 기금을 마련하고, 향후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국방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비 2% 공약은 이미 나토에서 내건 공약이기도 하지만 숄츠 총리는 "우리 자신의 안보를 위한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독일은 오랫동안 동맹 사이에서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게 군비 투자에 인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섣불리 군비를 늘리지 못했다. 여기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정권으로서 유럽 전역을 침공한 '원죄' 의식과 잔존한 우익 극단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작용해 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로 밀려든 푸틴 러시아의 위협에 독일도 군비 투자를 늘리고 제한적이지만 무기를 수출하는 입장이 됐다. 반전 평화 이념에 근원을 둔 녹색당의 대표로, 집권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아날레나 베어복 외교장관은 이를 두고 "외교 정책을 180도 돌리는 것이고, 슬프게도 지금은 그래야 할 때"라고 말했다.


'노르트스트림2' 벗고 "2035년 재생에너지 100%" 계획



이어 지난달 28일에는 로베르트 하베크 경제기후장관이 당초 2040년으로 예정돼 있던 '화석 연료 완전 폐기'를 2035년으로 끌어당기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7월 1일 발효를 목표로 의회에 제출될 재생에너지원법(EEG)은 2030년까지 독일 에너지의 80%, 2035년까지 100%를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 에너지로 충당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숄츠 총리는 단기적으로 독일 내에 자체 액화천연가스(LNG)터미널 2개를 신규 건설하고, 러시아가 아닌 미국 등의 액화가스를 수입해 발전에 충당하면서 수소 에너지도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한 지난달 말 숄츠 총리는 러시아에서 독일로 곧바로 이어지는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2' 사업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독일 재정 매파들도 일제히 정부 지출 옹호



재정 지출을 극도로 꺼리는 독일의 오랜 균형재정 기조 또한 군비와 에너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전환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단발성이지만 국방비 지출 1,000억 유로는 올해 연간 국방 예산(503억 유로)의 2배에 육박한다. GDP 대비 국방비 비율도 현재 1.5% 내외에서 2%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가속화한 에너지 전환 정책도 민간의 전력 비용 부담을 늘릴 것이 확실하기에 독일 정부는 민간에 추가 지원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사회민주당과 자유민주당, 녹색당의 '신호등 연정'으로 구성된 현 정부에서 사민당 우파인 숄츠 총리와 자유민주당 대표인 크리스티안 린트너 재무장관은 대표적인 '재정 매파'였다. 이들은 이제 재정 지출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입장이 됐다. 린트너 장관은 제1야당 기독민주연합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당대표가 "과도한 지출이 국가부채를 늘리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자 "이것은 우리 자유에 대한 투자"라고 일축했다.

인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