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눈물, 키예프의 눈물

입력
2022.02.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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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스노보드 황제' 숀 화이트의 눈가에 맺혔던 눈물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는 하프파이프 결선 마지막 무대에서 그만 착지에 실패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화이트는 헬멧을 벗어 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고, 박수 치는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거장의 퇴장을 향한 박수 세례가 멈추지 않자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스노보드 황제의 마지막 올림픽, 비록 번쩍이는 메달은 없었지만 감동은 더욱 진했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선 최민정의 눈물도 화제였다.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선에서 은메달을 거머쥔 뒤 하염없이 흘린 눈물에 국민들은 함께 글썽였다. ‘얼음 공주’란 별명의 최민정이 이렇게 오열한 적이 있었던가. 0.052초 차로 놓친 금메달의 아쉬움과 그래도 값진 은메달에 대한 고마움, 그간의 힘들었던 훈련 과정과 여러 가지 마음고생들이 한꺼번에 분출돼 쉬 그칠 수 없었던 것이리라.

숀 화이트와 최민정 말고도 많은 선수의 눈물이 올림픽을 지켜본 세계인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스포츠의 공감, 치유의 능력을 새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올림픽의 눈물 방울방울엔 그렇게 감동의 드라마들이 녹아 있었다.

코로나19가 온 지구를 삼킨 팬데믹 상황에서도 두 번의 올림픽이 무사히 치러졌다. 편파판정, 도핑 등 부정적인 이슈들도 불거졌지만 올림픽에서 사람들은 몰입과 희열, 카타르시스의 감동을 얻었다.

올림픽이 끝나는 게 아쉽다는 이들도 많았다. 이 환상의 세계가 끝나면 또다시 매정한 현실을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역시나 유난히 작았던 이번 올림픽의 성화가 꺼지자 곧바로 우크라이나에서 포성이 울렸다. 올림픽이 잠시나마 지켜냈던 평화가 허망하게도 금세 휘발해버렸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우크라이나 방위군에 들어가는 아버지가 어린 딸과 작별 인사를 하는 영상이 회자됐다.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모자를 씌워주던 아버지는 이내 울음이 터졌고, 딸과 아내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올림픽의 눈물이 카타르시스의 눈물이었다면, 우크라이나의 눈물은 절망의 눈물, 분노의 눈물이다. 방송 뉴스의 화면은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비추고 있다. 하염없이 흐느끼던 그들은 부디 먼 나라의 정치 문제로만 생각하지 말아달라며 지지를 호소한다.

수도 키예프의 함락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도 있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의식 깊숙한 곳에는 러시아와 얽힌 참혹한 역사 '홀로도모르'가 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곡물창고라 일컬어지는 비옥한 곳이건만 이 땅에서 1930년대 대기근으로 어린아이 등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일이 일어났다.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 의해 자행된 비극적인 역사다.

압도적인 열세지만 그들은 쉽게 굴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시인 타라스 셰브첸코의 시를 들고서 분연히 일어설 것이다. '떨치고 일어나/ 예속의 사슬을 끊어 버려라/ 원수의 피로써/ 그대들의 자유를 굳게 지키라’('유언' 중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전 세계가 함께 울어줘야 할 때다. 절망의 그들에겐 공감의 위로와 연대, 지지가 절실하다.

이성원 문화스포츠부장 sungwo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