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크라이나 서부 리비프(Lviv)까지 혼란에 빠뜨렸다. 리비프는 폴란드 국경에서 70~80㎞ 떨어진 주요 관문도시다. 러시아 침공으로 인접국으로 떠나려는 이들이 몰려들면서,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도 이곳에 교민을 위한 임시사무소를 개설했다.
리비프 외곽 지역에 살고 있는 교민 유경훈(41)씨는 25일 오전 9시(현지시간) 진행된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국경 근처에 차량이 2~3㎞씩 늘어서 있는데 검문소를 넘어가는 데만 며칠 걸릴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리비프는 24일 새벽 러시아 공습의 타깃에 들었다. 리비프공항 근처 군사공항이 폭격당하면서 인근 주민들이 방공호로 긴급 대피했다. 폭발음은 공항에서 10㎞가량 떨어진 유씨의 집까지 들렸다.
유씨는 우크라이나인 아내와 두세 살배기 두 자녀와 살고 있어 대피 계획을 미처 세우지 못했다. "장인, 장모가 여기에 있어서 우리만 살자고 (한국에) 가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는 사이 국경 도로가 극심한 혼잡을 빚어 육로 탈출도 여의치 않아졌다. 일찍부터 전운이 감돌던 동부 지역, 중부에 있는 수도 키예프 등 각지에서 서부 국경을 넘으려는 피란 행렬이 몰려들고 있어서다. 유씨는 "피란민들이 리비프에 들러 생필품도 사고 주유도 해가면서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주변국으로 떠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씨에 따르면 전날 리비프 시내 주유소들은 차량 주유는 물론이고 큰 통에 예비 기름도 넣으려는 피란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주유소 앞에 차량 100~200대가 줄지어 선 상황도 연출됐다. 대부분의 주유소는 주유량을 제한하고 있다. 한 주유소는 3만 원 이하의 주유만 허용했다고 한다. 대형마트는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이들로 붐비면서 계산하는 데만 3시간가량 걸렸다.
침공 이틀째인 이날, 리비프를 경유하는 피란 행렬은 줄었지만 도시 주요 기능은 대부분 마비됐다. 대형마트는 이날부로 영업을 중단했고 회사, 학교, 우체국 등도 문을 닫았다. 유씨도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아 집에 머물고 있다.
리비프 도심에선 경찰이 피란민을 불심검문하고 있다. 동부 지역, 특히 친러시아 반군이 장악한 돈바스 지역에서 반군 세력이 유입될 가능성을 우려해 그 지역에서 온 차량 위주로 검문한다고 한다. 유씨는 "우크라이나는 지역별로 차량 번호판이 달라 돈바스에서 온 차량을 식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