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에 미국은 한층 강도 높은 경제제재 칼날을 들이댔다. 단계적 제재의 진전된 핵심은 수출 통제와 금융제재 두 축이다. 러시아 금융자산의 80%, 첨단기술제품 수입의 50%를 묶어둘 수 있는 역대급 제재다. 유럽연합(EU)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역내 자산까지 동결시키는 최고 제재를 합의했다. 하지만 러시아 경제의 국제의존도가 낮고 당장 숨통을 옥죌 조치들은 아니어서 제재 효과 회의론도 끊이지 않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주요 7개국(G7) 화상 정상회의를 마친 뒤 백악관에서 대국민연설을 통해 러시아 제재 방안을 발표했다. 그는 “푸틴은 침략자다. 푸틴이 전쟁을 선택했다. 이제 그와 그의 나라는 (침공 및 제재) 결과를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공개한 제재안에 따르면 러시아 최대 은행 스베르방크와 2위 은행 VTB 등을 포함해 90여 개 금융기관의 미국 금융 시스템 거래가 막힌다. 주요 금융기관의 미국 내 자산도 동결됐다. 벨라루스의 주요 국영은행 2곳을 비롯해 24개 단체와 개인도 제재 목록에 올랐다.
백악관은 “이번 조치는 러시아 금융자산의 약 80%를 대상으로 하며 러시아 경제와 금융시스템에 심각하며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제재의 다른 한 축은 수출 통제다. 미 상무부는 반도체, 컴퓨터, 통신, 정보보안장비, 레이저, 센서 등이 러시아 수출이 제한되는 통제 품목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주로 국방, 항공우주, 해양 분야 기술과 품목이다. 한국의 휴대폰, 반도체, 자동차 수출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제재로 러시아의 첨단기술(제품) 수입의 절반 이상이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제재에는 미국과 G7 회원국, 27개 EU 회원국이 동참한다. 영국은 금융제재 동참은 물론 러시아 국적 항공사 아에로플로트 영국 취항 승인을 유예했다. 일본도 반도체 수출 통제 등의 제재안을 발표했다. EU는 25일 오후 외무장관 회담을 열어 러시아 은행 및 산업에 대한 추가 제재와 함께 푸틴 대통령과 라바로프 외무장관 개인에 대한 제재까지 패키지로 승인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발표에서 국제금융결제망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 러시아 퇴출 제재 역시 이번 발표에선 일단 제외됐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가 21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분리 독립을 승인한 후 러시아 주요 국책은행, 고위층, 국영 가스기업 가즈프롬 자회사 등을 순차적으로 제재해왔다.
물론 이 같은 제재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러시아는 세계 4위 외환보유국으로, 지난해 말 기준 6,303억 달러(약 758조 원)를 쟁여뒀다. 러시아 국채 해외 보유 비중도 10%에 불과해 금융제재 영향이 미미하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의 제재 대열 불참도 러시아에는 힘이 되는 요소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서방의 경제제재가 이어졌지만 큰 타격은 없었다. 미국이 제외한 푸틴 대통령 개인 제재를 EU가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공식적으로 푸틴 대통령이 EU 내에서 자산을 거의 소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상징적 조치에 그칠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도 “우리는 러시아에 대한 장기적 영향을 최대화하고 미국 및 동맹국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 같은 제재를 의도적으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부메랑 역풍’을 피하기 위해 제재 강도 자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