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이 기운 듯했던 대선 레이스가 다시 출렁이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주 오차범위 밖에서 7~8% 이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앞서 나가 민심의 결정이 거의 이뤄진 듯했다. 대선 투표일이 2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뒤집기는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지난 20일 윤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 결렬을 선언하고 이튿날 이 후보가 TV토론에서 맹공을 가한 이후 판세는 다시 1~2%를 다투는 초접전 양상으로 바뀌었다. 24일 공개된 오마이뉴스·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는 41.9%, 이 후보는 40.5%로 다시 오차범위 내 미세한 접전 양상이다. 단일화 결렬 선언 이후 나온 여러 여론조사도 엇비슷한 추세다. 하루가 다르게 엎치락뒤치락하는 지지율 변동이 이어지는 것이다.
선거 구도 측면에서 정권심판론이 우위에 있어 이 후보가 박빙 열세인 것은 분명하다. 더군다나 이 후보가 부인 김혜경씨의 ‘소고기 법인카드’ 논란으로 중도층 민심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어 윤 후보가 일단 고지를 선점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후보에게 유리한 변수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 대선 승부의 끝을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특이한 것은 통상 전화면접에선 이 후보가, 무선자동응답(ARS) 에선 윤 후보가 유리했던 흐름이 뒤바뀌었다는 점이다. 100% ARS인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1월 4주차 조사에서 이 후보는 윤 후보에게 10%포인트까지 뒤졌으나 21일 공개된 결과에서 이 후보는 43.7%로 윤 후보(42.2%)를 근소하게 앞섰다. 반면 100% 전화면접인 전국 지표조사(NBS)에서는 윤 후보가 시종 밀리다가 1월 말부터 이 후보를 따라잡아 2월 3주차 조사에선 9%포인트까지 앞섰다. 24일 공개된 4주차 조사에선 윤 후보가 39%로 이 후보(37%)를 2%포인트 앞선 상황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갈래지만 대체로 ARS 조사가 정치 고관여층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정권교체를 원하는 야권 지지층의 결집이 먼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최근 ARS 조사에서 이 후보 지지율이 상승하는 것은 민주당 지지층이 뒤늦게 시동을 걸어 최근 들어서야 빠르게 결집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ARS 조사에서 양측이 초경합을 벌이는 것은 이제서야 양측 지지층이 제대로 결집해 세 대결을 펼치는 국면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향후 2~3%의 부동층 표심을 누가 견인하는지에 따라 승부가 판가름 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런 지지층 결집 측면에서 변수는 2030 여성이다. 이른바 ‘이대남’들은 지난 1월초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등을 계기로 윤 후보로 쏠렸던 반면 ‘이대녀’ 표심은 여러 후보에 분산되거나 유보된 측면이 강했다. 이처럼 흩어져 있는 2030 여성들이 원래 민주당 지지 성향이었던 데다 이대남 결집에 대한 반작용으로 막판에는 민주당으로 돌아올 것이란 게 이 후보 측 기대다. 최근 ARS 조사에서 이 후보 지지율이 향상되는 것도 여성층의 ‘샤이 이재명’ 지지 때문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은 “이대녀 표심 흐름을 추론해볼 수는 있지만, 아직 통계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진보적 성향이 강한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어쨌든 이대남 표심이 윤 후보에게 선반영된 반면, 이 후보 측은 이대녀 표심의 여지가 남아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후보나 민주당의 내로남불에 대한 반감으로 민주당을 이탈했던 젊은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민주당으로 돌아오기 어렵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또 다른 중요 변수는 18대 대선(75.8%)이나 19대 대선(77.8%)과 같은 높은 투표율을 유지할 수 있느냐다. "찍을 후보가 없다"는 비호감 대선에다 오미크론 확산 여파가 투표율을 낮출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17만 명대에 달했고 대선 투표 무렵에는 하루 30만 명대로 폭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오미크론의 치명률이 낮다고 하더라도 노년층이 투표소에 가기가 상당히 부담될 수 있다.
이는 60대 이상에서 강세인 윤 후보에게 확실히 불리한 변수다. 더군다나 투표율이 낮아지면 조직력이 힘을 발휘한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까닭에 전국적으로 민주당의 조직력이 앞서 있다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물론 정권교체 열망이 정권 재창출론보다 높고 간절하기 때문에 오미크론 악재에도 불구하고 야권 지지자들의 투표율이 더 높을 가능성도 상존한다.
오미크론 확산뿐만 아니라 최근의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도 돌발 변수로 떠올랐다. 국제 정세가 불안정해지고 금융시장이 흔들리면서 경제위기론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도 2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상당수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위기론이 대두되면 통상 안정을 희구하는 심리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대승을 거뒀던 것도 코로나 위기 국면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경제위기론이 본격화하면 이 후보로선 정권교체론이 희석되고 후보자의 능력론이 부각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위기에 강한 경제대통령’이란 슬로건도 이를 파고든 것이다.
반면 위기론은 이미 2020년 총선에서 한번 효과를 봤던 터라 재탕에 불과하고 부동산 실패로 민주당 정권의 무능력이 심판대에 올랐기 때문에 능력론이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여론조사 선두주자인 윤 후보가 오히려 안정론의 수혜자가 될 여지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수는 역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행보다. 최근 2주간 지지율 변동의 가장 큰 계기도 안 후보의 단일화 관련 움직임이었다. 안 후보가 지난 13일 윤 후보에게 단일화를 제안하자 윤 후보 지지율이 상승세를 탔다. 안 후보가 결국 윤 후보로 합류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정권교체론이 탄력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안 후보가 20일 단일화 논의 결렬을 선언하고 윤 후보 측과의 갈등이 커지면서 안 후보 지지층의 향배도 다시 오리무중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안 후보의 지지율이 한 자리 숫자에 머물러 있지만, 이 후보와 윤 후보가 세 결집을 이뤄 접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안 후보가 어느 쪽과 각을 세워 싸우는지가 관건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안 후보가 '적폐 교대'를 주장하면서 향후 남은 TV 토론에서도 윤 후보와 충돌한다면 윤 후보의 정권교체론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다당제 카드로 안 후보 측에 연대의 손짓을 내밀고 있어 막판까지 '안철수 잡기'가 대선 승부의 핵심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