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아기들을 지키지 못했다

입력
2022.02.25 18:00
22면
7·4개월 남아, 7세 여아 잇단 비극
사실상 ‘재택방치’가 된 ‘재택치료’
영·유아부터 살리는 의료체계 필요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아이들은 괜찮은 줄 알았다. 지난 18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에서 태어난 지 7개월 된 남아가 코로나19 확진을 받고 재택치료 중 숨졌다는 소식은 그래서 더 충격이고 안타까웠다. 아프다는 말도 못 한 채 울다 세상을 떠났을 아기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기를 받아줄 소아과 의사와 병원이 없어 17㎞나 떨어진 안산까지 가야 했다는 사실엔 어른의 한 사람으로 죄책감마저 들었다. 제 목숨보다 귀한 아이를 약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보낸 엄마와 아빠의 심정은 또 얼마나 찢어졌을까. 무슨 말로도 위로하긴 힘들다.

22일 수원시 권선구에서 이번엔 생후 4개월밖에 안 된 남아가 재택치료 중 사망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가족들과 집에서 치료 중이었던 아기가 갑자기 숨을 쉬지 않자 부모는 곧바로 구급차를 불렀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기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경북 예천군에서도 재택치료 중이던 7세 여아가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사망했다. 확진 판정 당시 일반관리군으로 분류된 아이는 20일부터 가슴과 배가 아파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같은 날 영주의 한 병원을 찾았지만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고, 다시 21일 대구의 종합병원으로 옮겼지만 다음 날 하늘나라로 갔다.

아이들이 코로나19의 무풍지대란 믿음은 깨졌다. 물론 사망자 대부분은 70대 이상 고연령층이다. 그러나 최근 영·유아 코로나19 확진자의 잇따른 비극은 아이들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오히려 11세 이하 아이들은 백신도 맞지 못한 터라 사실상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다. 영·유아와 초등학생, 청소년을 위한 코로나19 방역 및 의료 체계의 허점이 없는지 점검하고, 살릴 수도 있는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부끄러운 일은 막아야만 한다.

무엇보다 영·유아 코로나19 확진자의 재택치료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사실 보호자가 항상 함께 있어야 하는 영·유아를 병원에서 치료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소위 지금 ‘재택치료’라는 건 아무런 처방이나 약도 없이 그냥 집에서 갇혀 지내는 것과 다름없다. 보건소에서는 확진자에게 집에서 7일 동안 나오지 말라는 점만 강조한다. 현장에서 바로 주는 약도 없다. 증상이 있을 때 진통해열제나 종합감기약을 복용하라는 게 질병관리청의 안내지만 보건소에선 이런 설명도 없다. 결국 대부분의 확진자는 인터넷을 뒤지거나 주변 확진자들 경험 등을 수소문해 스스로 약을 사 먹는다. 보건소에서도 감기약을 보내긴 하지만 택배가 도착하는 데는 3~5일이 더 걸린다. 그때까진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영·유아 확진 재택치료의 경우 소아과 의사나 의료진과 언제든 전화 상담이 가능한 연락망을 구축하고 비상시 병원으로 이송하는 건 기본이다. 집에 갇힌 상황에서 아이가 숨이 넘어가는데 전화 연결도 안 되고 병원도 못 찾아 구급차에서 허망한 일을 당하는 일은 반복돼선 안 된다.

사실 코로나19가 아니라도 갓난아기가 열이 나고 아프면 언제든 가까운 병원으로 갈 수 있는 응급 의료 체계를 갖추는 건 국가의 책무다. 그러나 현재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전국에 5곳, 소아 전용 응급실은 3곳밖에 안 된다. 더구나 소아과는 외과, 산부인과와 함께 전공의가 가뭄인 게 의료계의 현실이다. 열이 나는 영·유아의 진료 거부는 의료법 위반이라며 병원과 의사만 겁박하는 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재택치료는 사실상 '재택방치'가 됐다. 유전자증폭(PCR) 검사에서 양성이 나와 재택치료에 들어갔지만 이후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어렵게 전화 연결이 돼도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한다. 국민들이 코로나19에 걸려 가장 불안하고 어려울 때 “집에만 가만히 있으라”고 하며 국가가 할 일을 다했다고 할 순 없다. 적어도 영·유아에게 이런 재택치료를 계속할 순 없다. 부모의 속은 숯덩이가 된다. 아이들을 지킬 수 없다면 나라도 없다. 국가가 없다면 대선도 무슨 소용인가.

박일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