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를 대하는 북한의 태도가 조심스럽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돈바스 친(親)러시아 지역의 분리독립을 승인하고 병력을 파견했는데도 ‘묵묵부답’이다. 최근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ㆍ러시아와 밀착하는 움직임에 견줘 보면 러시아의 편을 들어줄 법도 하지만 선뜻 손을 내밀지 않고 있다. 이유는 강대국의 ‘내정간섭’을 용납하지 않는 북한의 대외기조에서 찾을 수 있다.
북한 외무성은 22일 일본과 러시아가 분쟁 중인 쿠릴열도 문제에서 미국이 일본을 지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토 야망을 추구하는 일본을 정치ㆍ군사적으로 적극 뒷받침해 대러시아 압박전략 실현에 써먹으려는 미국의 도발적 행태”라며 러시아를 응원했다. 반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로미(러미) 사이의 대립이 극도로 격화하고 있다”면서 상황을 전달하는 한 문장뿐이었다. 앞서 13일 나온 외무성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외무성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의 지속적 존재와 확대 목적은 두말할 것 없이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견제ㆍ제압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를 대놓고 옹호하기보다 나토를 비난하는 데 무게를 둔 것이다.
북한이 ‘러시아 편들기’에 부담을 느끼는 데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러시아의 행태가 북한이 견지해 온 대외원칙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잇단 미사일 시험발사를 주권국가의 자주적 권리라 주장하며, 미국 등 국제사회의 비판을 내정간섭으로 치부한다. 대북 제재와 주한미군 배치 등을 북한을 억압하는 적대 정책으로 규정하고, 미국에 날을 세운 배경이다. 행위만 보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려는 러시아 역시 미국과 다르지 않다. 힘을 동원해 약소국의 지위를 위협하는 내정간섭의 ‘전형’이다. 아무리 가까운 우방이라도 체제 유지와 직결되는 대외원칙이 흔들릴 수 있는 만큼 단정적 메시지를 내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중국 역시 러시아 지지를 주저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대만이나 신장위구르 등 소수민족 문제를 비판할 경우 “내정에 개입하지 말라”며 즉각 격한 반응을 보인다. 같은 주장을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입하면, 러시아의 침공을 정당화하는 것은 스스로 세운 논리를 무너뜨리는 꼴이나 다름없다. 정치ㆍ경제적으로 중국에 크게 의존하는 북한이 굳이 중국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러시아를 옹호할 까닭이 없는 셈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24일 “북한이나 중국이나 섣불리 러시아의 무력 행위를 두둔했다간 외교원칙이 뿌리부터 흔들리게 돼 앞으로도 관망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