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도중 강제로 고꾸라진 채 숨진 말이 지난해 8월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은퇴한 경주마 '마리아주'로 밝혀졌다. 마리아주는 지난해 11월 2일 촬영에 동원됐다 나흘 뒤인 6일 폐사 처리됐다. 은퇴한 지 3개월 만에 사망한 것이다. 동물단체들은 KBS에 마리아주의 사망 원인, 사후처리 등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밝힐 것을 요구하는 한편 한국마사회와 정부에 퇴역경주마를 위한 복지체계 구축을 촉구했다.
한국동물보호연합∙생명체학대방지포럼은 23일 KBS를 통해 확인한 결과 드라마 낙마장면 촬영도중 숨진 말 '까미'(예명)는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경주마로 활약했던 마리아주(5세∙암컷)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2017년 미국 번식용 말 티즈원더풀(부)과 어나더헤리티지(모) 사이에서 태어난 마리아주는 2019년 2,000만 원에 경주마로 팔렸다. 성적이 좋지 않아 곧바로 말 대여업체에 팔렸을 것이라는 예상은 적중했다. 2019년 11월 경주마로 등록된 마리아주는 2020년 12월, 지난해 2월과 8월 세 번 경주에 출전했지만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고, 상금은 0원이었다. 1년 6개월간 성적을 내지 못한 마리아주는 지난해 8월 경기도 말 대여업체에 팔렸고, 3개월 만인 11월 드라마 촬영에 동원됐다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경주마로 뛰는 동안 총 54번의 치료를 받았고, 이 가운데는 사용금지인 '페닐부타존'도 여러 차례 투약된 것으로 드러났다.
김정현 대한재활승마협회 이사는 "경주 성적이 좋진 않지만 그만큼 순하고 느긋한 성격이라 은퇴하자마자 승용마로 팔렸을 것"이라며 "산중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스턴트맨)을 태워줄 정도로 사람 친화적인 성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동물보호연합∙생명체학대방지포럼 등 95개 동물단체들은 "마리아주는 퇴출 후 고작 3개월 만에 '언제 죽어도 상관없는 말'로 내몰렸다"며 "이는 지난해 퇴출된 다른 1,550마리의 퇴역경주마의 운명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은 짧은 일생을 인간의 경제적 도구로 혹사당하다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며 "한국 마사회와 농림축산식품부에 퇴역 경주마들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2019년 퇴역경주마의 구타와 불법도축을 제주 검찰에 고발한 박창길 생명체학대방지포럼 대표는 "공영방송인 KBS는 마리아주의 사망 원인, 사후 처리 등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밝힘으로써 도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모든 동물에 있는 고시조차 경주마를 위해서는 단 한 줄도 찾아볼 수가 없다"며 "사각지대에 놓인 경주마를 위한 복지프로그램과 법 제도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방송 촬영을 위해 안전과 생존을 위협당하는 동물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국민청원은 마감날인 20일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청와대 답변 요건을 충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