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오는 24일(현지시간)로 예정됐던 미러 외무장관 회담을 취소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하면서 더 이상 ‘대화’에 나서는 게 무의미해졌다는 판단에서다. 전운이 짙어지는 가운데 이번 회담이 절충안을 찾을 물꼬가 될 거라는 기대도 나왔지만, ‘외교적 창’마저 닫힐 공산이 커지면서 사태 봉합을 위한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2일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 회담 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러시아 측과의 회담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 침공이 시작된 현 시점에 회의를 진척시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도 회담 취소를 알리는 서한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양측은 우크라이나 관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오는 2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외무장관 회담을 열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을 경우’에 한해 가능했다는 게 블링컨 장관의 설명이다. 러시아가 이를 무시해 회담의 전제 조건이 파기된 만큼 더 이상 담판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우크라이나 위기를 대화로 풀기 위해 미국과 러시아 사이 중재에 힘 써온 프랑스 역시 러시아와의 만남을 취소하기로 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장 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은 당초 25일 프랑스 파리에서 라브로프 장관을 만날 예정이었지만, 이를 취소하기로 했다. 르드리앙 장관은 “(러시아의 행동은) 국제법 위반이고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청렴에 대한 공격이자 러시아가 국제공약과 민스크 협정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잇따른 외무장관 회담 취소로 미러 정상회담 개최 역시 불투명해졌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러시아가 경로를 바꾸지 않는 한 외교는 성공할 수 없다”며 현 시점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회담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러시아의 긴장 완화 조치를 언급하며 “이는 군대를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여전히 대화 가능성은 남아있다. 러시아가 긴장 완화와 외교적 해결책 모색에 진지하다는 점을 국제 사회에 보여줄 만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됐다면, 미국도 외교에 전념한다고 블링컨 장관은 덧붙였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전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분리주의 공화국들의 독립을 승인하고 이 곳에 병력 투입을 명령했다. 미국은 이를 ‘침공’으로 규정하고 해당 지역에 대한 제재에 이어 이날 러시아 최대 국책은행 등 은행 2곳과 자회사 42곳에 대한 전면 차단 등 제제를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