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극우 음모론 단체 '큐어넌' 창시자는 한국계 미국인?

입력
2022.02.2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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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프랑스 연구진 분석 결과

수면 아래서 활동하던 미국 내 음모론자들을 현실 세계로 불러내고 정치판마저 뒤흔들었던 극우단체 큐어넌(QAnon)의 창시자가 한국계 미국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간 미군 수뇌부나 정부 고위관계자일 것이라는 관측이 높았지만 이를 뒤집는 결과다.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큐어넌 시초가 됐던 익명 네티즌 ‘큐(Q)’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소프트웨어 개발자 폴 퍼버(55)와 극우성향 웹사이트 운영자이자 한국계 미국인 론 왓킨스(34)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퍼버는 오랜 기간 온라인상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 관련한 음모론을 펼쳐 왔다. 왓킨스는 백인 우월주의와 신(新)나치 성향 네티즌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애리조나주(州) 의회 선거에도 나선 상태다.

이 결과는 스위스 스타트업 ‘오프애널리틱스’와 프랑스 언어학자 플로리안 카피에로, 장바티스트 캠프가 Q가 남겼던 게시물을 컴퓨터로 분석해 나왔다. 연구진은 그가 사용한 약 10만 개 단어와 미국 사회에서 재야 극우 인사로 이름을 알린 13명이 온라인에 남겼던 단어 1만2,000개를 비교했다. 글의 패턴을 분석하기 위해 머신러닝 기법도 동원됐다.

이들은 Q의 초반 글은 퍼버와 유사하지만 2018년 이후 왓킨스의 특성이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 두 사람이 시기를 나눠 활동했을 거라고 결론 내렸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은 Q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NYT는 “연구진은 계량적 문체분석법(스타일로메트리ㆍ텍스트를 분석해 필자를 규명하는 통계 기반의 접근법)으로 알려진 수학적 접근 방식을 사용했다”며 “스위스 연구팀은 정확도를 93%로, 프랑스는 99%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Q는 2017년 10월 온라인에 “미국 정부 내 사탄 숭배자가 소리 없이 활동하고 있다”는 글을 올리면서 음모론 신봉자들을 끌어모았다. △미국 민주당이 비밀 권력 집단인 ‘딥 스테이트’와 결탁해 있고, 이 중 소아성애자가 많다거나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에 출마한 것은 이들로부터 미국을 구하기 위한 것 등 검증되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며 극우 세력 결집의 중심이 됐다. 그가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마다 보수 세력은 열광했고, Q의 주장을 신봉하는 이들에겐 ‘큐어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국 대통령 선거 한 달 뒤인 2020년 12월 초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띄운 게 마지막 행보다. 이 때문에 그가 자신의 정체를 직접 공개한 적은 없지만, 큐어넌 내부와 음모론에 열광하는 보수 진영에서는 그가 정부 내부 기득권 세력의 소식에 정통한 고위 관계자나 정부 실세일 것이라는 추정이 힘을 얻어 왔다.

허경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