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정로(禪門正路)는 한국 불교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불교 내부에서나 학계에서의 논의는 성철스님이 문제 삼았던 돈오점수(頓悟漸修)에 대한 내용 중심으로 고찰됐습니다. (중략) 이제는 우리가 성철스님에 대해서 말하기보다는 성철스님을 따라서 성철스님이 되는 길을 걸어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강경구 동의대 중국어학과 교수)
성철스님이 생전에 출간한 법어집 ‘선문정로’를 현대적 언어로 풀어낸 해설서 ‘정독 선문정로’가 나왔다. 1981년 원전이 출간된 이후 40여 년 만의 일이다. 성철스님은 선문정로에서 한국 불교의 전통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을 바르게 실천하는 길을 제시하고 스스로 “부처님께 밥값을 했다”고 자평했지만 어려운 내용이 국한문혼용체로 쓰여 전문가들도 책을 완독하기가 어려웠다. 해설서는 원문을 싣되 구절마다 현대어역과 해설을 함께 제시해 비전문가도 성철스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따를 수 있도록 돕는다.
해설서를 펴낸 강경구 교수는 21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출판기념 간담회에서 불교계와 학계에서 벌어진 돈점(頓漸)논쟁을 넘어설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논쟁이 이룩한 학문적 성취를 인정하되 앞으로는 선문정로에 담긴 성철스님의 수행법을 실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성철스님은 선문정로에서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는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돈오돈수(頓悟頓修)' 사상을 제시했는데 이것이 보조국사 지눌이 제시한 돈오점수를 비판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불교계와 학계에서는 1990년대 내내 돈점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선문정로의 진정한 가치가 주목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강 교수는 “학교에서 명상법을 가르쳐보면 들어보지도 못한 명상법을 묻는 학생도 있다”면서 “그야말로 명상의 춘추전국시대라고 이름 붙일 정도로 현대는 명상의 다원화 시대”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서 “돈오점수, 돈오돈수만 해도 무수한 조합이 가능하고 그러한 조합들은 저마다 말하는 방식과 실천하는 길에서 틀릴 수가 없다. 돈오점수가 맞다, 돈오돈수가 맞다는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수행법은 그 나름의 논리와 실천력을 갖고 있다”며 “성철스님이 보여준 이론은 실천의 체계성이나 깨달음에 대한 신뢰성에 있어서 완벽한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무심을 실천해서 궁극의 무심에 도달하는 길이 성철스님의 선이 우리를 안내하는 길이라고 믿는다”면서 “선문정로는 성철스님의 고유한 사상을 위한 철학서가 아니라 수행자를 위해 내지르는 고함이고 매질”이라고 강조했다.
해설서를 감수한 벽해원택 대종사 역시 “성철스님께서 책을 내놓으셨을 때 (경문을 가르치는) 강주 스님들도 너무 어렵다고, 설명할 재주가 없다고 불평을 많이 하셨다”면서 “성철스님의 뜻을 따라서 번역할 수 있는 학자를 찾지 못했고 돈점논쟁만 불거졌다”고 설명했다. 벽해원택 대종사는 "학계에서 돈오점수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주류여서 돈오돈수 연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성철스님께서 열반하시고는 돈점논쟁도 시들해졌는데 강 교수의 연구가 많은 참선 수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