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피겨 단체팀, 은메달 따고도 '빈손 귀국'하게 된 사연은?

입력
2022.02.20 12:00
피겨 단체전 2위 美...CAS에 시상식 개최 제소
CAS, 美 제소 기각...선수들 메달 없이 귀국행
바흐 IOC 위원장, 성화봉 선물로 달래기도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단체전에서 2위에 오른 미국 대표팀이 올림픽이 끝나기 전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길 원했지만 끝내 무산됐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AP통신은 19일(현지시간) CAS가 이날 오후 늦게까지 마라톤 회의를 진행했지만 미국 대표팀의 시상식 개최를 요구한 제소를 기각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피겨 단체전 2위에 오른 미국 선수 9명은 은메달을 받지 못하고 귀국해야 한다"고 전했다.

미국 대표팀은 7일 열린 피겨 단체전에서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일본은 3위에 올랐다. 당시 '간이 시상식'을 통해 러시아와 미국, 일본 선수들은 빙둔둔 인형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동계올림픽에선 경기가 끝난 뒤 간이 시상식을 먼저 진행한다. 이후 공식 시상식 날짜를 정해 야외 메달플라자에서 메달을 전달하는 '진짜' 시상식을 연다. 이때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의 국가가 연주되고 국기 게양이 이뤄진다.

그러나 8일 예정됐던 시상식은 열리지 못한 채 무기한 연기됐다. 이번 올림픽을 떠들썩하게 만든 러시아의 카밀라 발리예바의 도핑 파문 때문이다.


앞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발리예바가 메달을 딴 경기의 시상식은 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가 발리예바가 제출한 도핑 샘플에서 금지 약물인 트리메타지딘이 검출됐다고 통보해 잠정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가 철회했기 때문이다.

트리메타지딘은 협심증 치료제이자 흥분제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RUSADA는 올림픽이 개막한 것도 모자라 피겨 단체전이 열린 뒤인 8일에야 이를 통보했다.

그러자 IOC와 세계반도핑기구(WADA),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이에 대해 CAS에 발리예바의 경기 출전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이의 신청을 했다. 하지만 CAS는 이에 대해 기각하며 발리예바의 개인전 참가를 허용해 논란이 됐다.

IOC는 맞불을 놓았다. 발리예바의 도핑 관련 의혹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그가 입상한 경기의 시상식은 열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다만 발리예바는 개인전에서 쇼트 프로그램은 1위였으나, 프리 프로그램은 빙판에 엉덩방아를 찧는 실수를 거듭해 4위로 올림픽을 마쳤다. 그가 메달권에서 벗어나자 여자 개인전 시상식은 무리없이 열리게 된 것.

이번 대회 여자 개인전 1위는 255.95점의 안나 셰르바코바, 2위는 251.73점의 알렉산드라 트루소바(이상 러시아올림픽위원회)가 차지했다. 3위는 233.13점의 사카모토 가오리(일본)다.


바흐 위원장, 메달 대신 성화봉 달랬지만..."전 세계인 앞에서 축하해달라"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단체전 시상식이 열리지 않는 것에 미안함을 표시하며 미국 대표팀에게 성화봉을 선물했다. 그러나 미국 선수들은 성화봉보다는 메달을 받기 원했다.

결국 미국 대표팀은 변호인단을 통해 바흐 위원장에게 20일 폐막식 전까지 시상식 개최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그러면서 CAS에 제소하며 시상식 개최 요구를 강하게 어필했지만 끝내 메달을 받지 못하고 귀국하게 됐다. 발리예바 도핑 위반에 대한 조사는 최소 몇 개월에서 최대 수년이 걸릴 전망이다.

램지 베이커 미국 피겨스케이팅협회 이사는 "올림픽에서 메달 세리머니를 하는 것은 다른 곳에서 흉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베이징을 떠나기 전에 전 세계인들 앞에서 축하해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강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