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에게 "입 모양만 보고 뭐라는지 맞춰봐" 무례

입력
2022.02.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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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청기·인공와우 통해 ‘듣고 말하는’ 청각장애인들
“말 잘하면서 청각 장애?” 흔하디흔한 오해와 차별
장비 써도 80~85% 들려… “난청인 지원정책 필요”

청각장애인 박현진(23)씨는 '말하고 듣는다'. 오른쪽 귀엔 보청기, 왼쪽 귀쪽에는 인공와우(달팽이관)를 쓴다.

다만 매번 잘 들리는 건 아니라, 상대의 말을 놓칠 때도 있다. 그는 "(청각 보조 장치를 꼈는데도) 왜 못 듣는 척하냐, 사실 들리는데 사람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때도 있다”고 했다. 학창 시절에는 입 모양으로 욕설을 하거나, 소리를 내고서는 내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는 등 차별 행위를 하던 또래도 일부 있었다.

보청기를 쓰는 김인선(37)씨 또한 “발음 훈련이 덜 됐던 어린 시절에는 ‘혀가 짧다’고 놀려대거나, ‘진짜 못 듣냐’며 등 뒤에서 말하고는 맞춰보라는 둥, 입 모양만 보고 맞춰보라는 둥 실험 쥐처럼 대한 친구들도 있었다”며 “철없던 시절 장난이었겠지만 당사자에겐 평생 남는 상처”라고 말했다.


청각장애인이라고 하면 보통 농인(농문화 속에서 한국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보청기나 인공와우를 통해 소리를 듣고 입 모양을 읽으며 대화하는 이들이 더 많다. 수어를 제1언어로 쓰지 않는 이들을 ‘난청인’, 또는 구화를 주로 쓴다는 점에서 ‘구화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20년 12월 기준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국내 청각장애인 수는 39만5,789명. 보건복지부의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각장애인의 74%가 보청기를 쓰고, 4.2%가 인공와우 수술을 했다고 답했다. 인공와우란 외부 소리를 전기신호로 변환, 달팽이관에 있는 청신경 세포를 자극해서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다.

‘말하고 듣는’ 청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다보니,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설명하고 이해시켜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직장인 황민아(33)씨는 “저 같은 난청인이 구화를 쓰면, ‘그건 청각장애가 아니네’ ‘너는 말 잘하잖아’라는 식의 반응이 돌아오면서 설명해야 될 게 산더미처럼 늘어난다”고 난감해했다.


이준행(27)씨는 "여행을 끝내고 돌아올 무렵, 보청기와 인공와우 배터리가 다 닳은 일이 있었다"며 "기차 안에서 승무원이 제게 말을 걸기에 '보청기 배터리가 없어 듣지 못한다'고 말씀드렸지만, '말을 하는' 저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믿지 못한 채 그저 말을 이어가시더라"고 회상했다. 그는 "내가 직접 말을 해도 상대가 안 믿는 상황이라니,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힘이 쭉 빠졌다"고 토로했다.

보조 장치를 당사자 허락 없이 만지려 했다거나, 인공와우에서 나오는 불빛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고 시비를 걸었다는 등의 경험담도 온라인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김인선씨는 "인공와우나 보청기는 그 사람의 두 번째 귀나 다름없다. 함부로 만지는 건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사람의 몸을 허락 없이 만지거나, 쓰고 있는 안경을 건드리면 안 되는 게 상식인 것처럼 말이다. 인공와우는 내외부 장치(내부 임플란트·외부 어음처리기) 기계값만 2,000만 원이 넘는 고가장치다.


보조 기기를 쓴다고 해서 단숨에 ‘청인처럼’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준행씨는 "잘 들어도 80~85% 정도고, 놓치거나 못 들을 때도 있다"고 했다. 소리 조절(피팅·맵핑)과 청능훈련 과정을 거쳐 새로 듣는 소리에 익숙해지기까지 짧게는 몇 개월, 길면 1년 넘는 시간이 걸린다. 인공와우 수술 이후 적응을 못하거나, 어지럼증 등 부작용으로 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적응한 후에도,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 회의나 모임, 소음이 심한 공공장소, 입 모양을 볼 수 없고 발음이 불분명한 상황에선 듣기 어려워진다. 목소리 음역대나 말투(사투리)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청각장애인과 대화할 때는 가급적 천천히, 또박또박, 조용한 곳에서 입 모양이 보이게 말해야 하는 이유다.

청각장애인을 지원하는 사단법인 '사랑의 달팽이' 조영운 사무총장은 “주변 소음, 잡음은 배제시키고 안내방송이나 말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게 해주는 ‘히어링 루프’를 은행이나 관공서, 대중교통 등 필수 시설만이라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또 난청 학생들이 교사의 말을 잘 들을 수 있게 도와주는 ‘FM 수신기’, 공공행사에서 수어·문자 통역 동시 제공 등이 보편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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