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청각장애인... 마스크 쓴 세상, ‘소통'이 모두 사라졌다

입력
2022.02.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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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청각장애인의 일상]
입 모양 봐야 하는데, 관공서도 투명 마스크 외면
대선 토론회 4명 발언을 1명이 수어 통역해 혼란
“수어·필담·구화 등 청각장애인마다 소통법 달라”

난청인인 황민아(33)씨는 '독순'(입술의 움직임을 읽는 것)을 통해 소통하고 말한다. 인공와우(달팽이관) 수술을 해서 소리를 듣긴 하지만 "독순에 의지하는 게 크다"고 한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그의 의사소통 통로는 막혀버렸다. 마스크가 사람들의 입을 가리면서다.

황씨는 “병원이나 관공서에서 의사소통이 매우 힘들기 때문에, 한 장에 3,000원이 넘는 꽤 비싼 가격이지만 입 모양이 보이는 투명 마스크를 직접 사서 갖고 다니며 직원에게 착용을 부탁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KF94 마스크는 한 장에 300~500원이면 사지만, 투명 마스크는 3,000~5,000원 정도다.


‘청각장애가 있으니 입 모양을 볼 수 있도록 잠깐만 마스크를 내려달라’고 부탁을 해도, 상대방이 난색을 표하기 일쑤다. 중앙재난안전대책수습본부가 정한 마스크 미착용에 대한 과태료 부과 예외 상황엔 ‘수어 통역을 할 때’는 있어도, 청각장애인의 일상적인 대화 상황에 대한 항목은 없다.

수어 통역 시 마스크를 내릴 수 있게 한 건 수어의 필수 요소인 표정이나 입 모양을 보여주기 위해서인데, 독순을 하는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고려는 없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3년. 모든 이가 새로운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불편을 겪고 있지만 '시각 정보'로 세상과 소통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겐 더한 시련이 되고 있다.

입술 움직임 가리는 마스크의 벽

수어와 구화(말하기), 필담(읽고 쓰기)을 상황에 따라 쓰는 코다맘(35·닉네임)씨는 “코로나 전에는 입 모양만 봐도 다 알아봤기 때문에 밖에서 온전히 구화로만 소통했지만, 지금은 청인(듣는 사람)인 남편과도 마스크 때문에 대화가 잘 안 된다”고 했다. 집에선 문제가 없지만, 외출 시 마스크를 쓰면 가족 간에도 소통이 어렵다는 것이다. 은행·병원·관공서 등 곳곳에서 소통 장벽에 부딪히는 건 예삿일이다.


입술의 움직임을 읽는 '독순'으로 소통하는 청각장애인에게 마스크를 낀 얼굴은 곧, 청인에게 음소거된 스피커나 다름없다.

수어를 제1언어, 일상어로 사용하는 농인끼리도 마스크가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한국수어와 한국어 문자, 국제수어, 아일랜드수어, 영어 문자 등 ‘5개 국어’ 사용자인 농인 노선영(35) 작가는 “수어에는 손짓뿐 아니라 비수지(非手指) 기호(얼굴 표정, 입술 모양 등)도 많이 포함돼 있어 마스크를 쓰면 수어 전달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관공서들 투명 마스크 비치 안 해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된 2020년 11월,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 장애인 단체들은 ‘세상과의 단절’을 호소하며 일찍이 정부에 대책을 요구했다. 입 모양이 보이는 ‘투명 마스크’를 최소한 공공기관과 복지시설에는 반드시 비치하도록 하고, 마스크 의무화에 따른 장애인 차별이 없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북 안동시, 경기 동두천시, 경기 고양시, 서울 서초구, 광주 광산구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민원실에 투명 마스크를 구비해 둔 경우를 빼고는, 중앙 정부 차원의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선별진료소에 수어통역 영상전화기를 설치하는 것도 지자체 의지에 맡겨진 실정이다.

자막 없어 수강 포기하는 학생들

마스크 의무화로 그 단면이 드러났을 뿐 '소리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는 '시각 언어' 사용자들을 곳곳에서 배제한다. 청각장애인 학생들은 비대면 수업 전환 후 자막·수어 통역이 부족해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거나 아예 수강을 포기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열풍인 K콘텐츠도 한글 자막이 없어 즐길 수 없을 때가 많다.

대중교통에선 '보이는 전광판'이 부족해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거나, 비행기 지연·게이트 변경 안내를 놓치는 일도 허다하다고 한다. 혹여 지하철을 타다가 화재 같은 재난 상황이 닥쳐도 '안내방송이 소리로만' 나오니 알 도리가 없다.


청각·시각·시청각 등 9개 장애인 단체가 모인 ‘감각장애인 선거공약 연대’가 공약 마련을 촉구하는 이유다. 이들은 청각장애 분야 공약으로 △의사소통 바우처 도입(일정 시간 수어·문자 통역 지원) △의료기관 수어통역 환경 개선 △방송·미디어 접근권 △교육권 등 13개 정책을 요구했다.

당장 대선 토론회만 보더라도, 수어통역사 1명이 후보 4명의 말을 소화한다. 농인들은 "후보 입 모양도 잘 안 보이는데, 여럿이 동시에 발언하기 시작하면 통역사가 도통 누구의 말을 옮기는 건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청각장애인과 소통에 무지한 사회

미비한 제도에 더해, 소통을 어렵게 하는 걸림돌은 또 있다. 미비한 사회 인식이다. 상당수의 비장애인 시민들은 청각장애를 이해하고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어쩌면 당연하다. 누가 알려준 적도 없고, 경험도 대개 없다. 하지만 그 ‘당연한’ 무지와 무심함이 상대에게는 무력감으로 다가온다.

매번 수어·문자 통역을 받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주로 청각장애인들은 청인들에게 '필담'을 요청할 때가 많다고 한다. 노 작가는 “말 대신 필담을 부탁드려도, 좀 어색해서 그러신지 멀뚱멀뚱 서 있는 분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필담을 하긴 하는데 키워드만 적으면서 말은 계속하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적절한 방법은 아니다. 그나마 스마트폰 보급으로 종이와 필기구 없이도 휴대폰 메모장으로 대화할 수 있고, '음성 자막 변환' 애플리케이션(앱) 등이 유용하게 쓰인다.

공공기관조차 무지함을 드러낼 때가 있다. 코다맘씨는 지난해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 '코로나19 심리지원' 수어 통역 서비스가 시작된다는 공고를 보고 신청했다. 황당한 건 일주일 뒤 '안내 전화'가 걸려왔다는 사실이다. 그는 "서비스 초기라서 매뉴얼 숙지가 안 됐겠지 싶어, '다른 청각장애인에게는 전화 대신 문자로 안내를 해달라'고 말은 드렸지만 너무 당혹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청각장애인이라고 하면, 대뜸 목소리 데시벨을 높여 고함치듯 말하는 이들도 있다. 배려가 아닌 실례다. 황씨는 "말을 한 번에 못 알아들으면 크게 얘기하는 분도 많은데, 그러면 주변에서도 이상하게 쳐다보고 매우 당황스러워진다”며 “다시 한번 차분하게 말해주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 아예 귀에 대고 말을 하려는 사람도 있는데, 정작 그러면 입 모양을 못 보기 때문에 소통이 어렵다.

청각장애인과 대화할 준비가 됐다면, 주의할 점 한 가지. 사람마다 구화, 수어, 한국어 문자 등 편한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당사자에게 ‘원하는 소통 수단’을 물어보는 게 먼저다. 한국수어와 한국어는 문법 체계가 다른 별개의 언어기 때문에 수어가 제1언어인 농인 중에는 문자 독해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수어를 아예 모르는 난청인들도 상당수다.

청각장애인 김인선(37)씨는 제안했다. “청각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조직에서는 구두 전달보다는 필담이나 사내 온라인 메시지 시스템 등을 통해 정확하게 전달해 주면 좋아요. 어떻게 청각장애인과 소통하면 되는지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꾸준히 자주 교육해 준다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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