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 전선 없는데 왜 불꽃이?" 영덕 산불 미스터리

입력
2022.02.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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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지점서 타다 만 반사필름 발견
영덕군 "전봇대 말려 불꽃 일으켰다"
전봇대 전선 없어...방화 가능성 제기
최근 한 달 방화 추정 산불 잇따라
산림청 "모든 가능성 열어 두고 조사"

경북 영덕 산불의 원인으로 농업용 반사필름이 지목된 가운데 방화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최근 이 지역에선 방화추정 산불이 잇따랐고, 최초 발화지점으로 추정한 전봇대가 전기가 흐르지 않는 지지용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17일 영덕군에 따르면 영덕소방서와 경북소방본부, 한국전력공사(한전) 영덕지사 직원들은 처음 불이 난 영덕군 지품면 삼화리 뒤편 야산을 찾았다. 발화지점은 마을 입구에서 폭 4~5m의 꼬불꼬불한 비포장 산길을 따라 1㎞가량 올라가야 다다르는 산 중턱이다. 불이 난 곳은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봇대를 시작으로 동쪽 영덕읍 방향으로 우거진 숲이 온통 검게 그을려 있었다.

영덕군은 지난 15일 발화지점을 둘러본 뒤 누군가 고의로 불을 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방화 제보자에게 포상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었다. 최근 지역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크고 작은 산불이 잇따랐다. 지난달 19일 오전 11시 10분쯤 영해면 괴시리 야산에서 불이 나 3㏊를 태우고 3시간 만에 진화됐다. 앞서 지난달 6일에는 오전 1시 30분쯤 창수면 삼계리 야산에서, 5시간 뒤인 오전 6시 14분쯤에는 900m 떨어진 창수면 오촌리에서 산불이 났다. 영덕군과 소방당국은 세 곳 모두 방화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번 산불 발화지점에서 타다 만 반사필름 한 장이 발견되면서 방화 가능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다시 현장을 찾은 영덕군은 가로와 세로, 각 50㎝의 농업용 반사필름 한 장을 발견하고 전봇대를 주목했다. 과수용 농자재인 농업용 반사필름은 과일이 아래쪽까지 골고루 익도록 햇빛을 반사해 비출 때 쓰인다. 비닐재질에 전기가 잘 통하는 알루미늄을 코팅해 제작하기 때문에 전봇대에 걸리면 정전이나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 더구나 산 아래 삼화1리 주민들은 두 차례 정전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이에 군은 이날 강풍에 어디선가 날아 온 반사필름이 전봇대와 엉켜 불꽃을 일으킨 뒤 산으로 번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전신주가 전선과 연결돼 있지 않고, 맞은편 전봇대를 지지하기 위해 세운 기둥으로 확인되면서, 방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소방서 관계자는 “발화지점의 전신주는 전선이 없고 전기가 흐르는 맞은편 전봇대와 와이어로 연결돼 있는 지지용”이라며 “마을에서 발화지점까지 차로 쉽게 올라 올 수 있고, 거리도 가까워 반사필름 때문에 우연히 불이 났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3일간 계속된 영덕 대형산불은 축구장 560개에 달하는 400㏊를 태우고 17일 오후2시 30분쯤 주불이 진화됐다. 산림청 관계자는 “산불발생 원인과 정확한 피해면적은 조사 및 감식반을 급히 파견해 본격적으로 파악할 계획”이라며 “반사필름이 거론되지만 속단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덕= 김정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