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포옹…전운 속에 피어난 평화

입력
2022.02.17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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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에어리얼 결승이 열린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 겐팅 스노파크. 이 종목 디펜딩 챔피언인 올렉산드르 아브라멘코(34ㆍ우크라이나)가 은메달을 획득하면서 이번 대회 우크라이나에 첫 메달을 안겼다.

아브라멘코가 국기를 들고 기뻐하는 순간 다가가 손을 잡더니 뒤에서 껴안으며 축하를 건넨 선수가 있었다. 2회 연속 동메달을 차지한 러시아올림픽위원회의 일리아 부로프(31)였다. 부로프는 2015년 국가 주도의 도핑 스캔들로 올림픽 국가대표를 구성하지 못하는 러시아에서 ROC 소속의 개인 선수 자격으로 베이징에 입성했다.

두 선수의 국적에 관심이 쏠리면서 화제가 된 장면이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이 정점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가 지난해 말부터 10만 명이 넘는 병력을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배치하면서 양국은 일촉즉발 대치를 벌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주 유럽 국가 정상들과 화상회의에서 16일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개시일로 지정할 만큼 국제사회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다행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지 않은 이날 베이징에서 두 나라의 훈훈한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두 선수의 포옹을 "두 나라 사이에 고조된 긴장을 극복하는 제스처"라고 평가했다. 러시아 스포츠 해설자 게오르기 셰르단체프는 "2022년 2월 16일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대단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함께하고 있다"며 놀라워했다. 러시아 스포츠 매체 챔피온앳은 "정치가 스포츠를 관통하는 여러 뉴스에도 불구하고 두 선수는 행복하게 포옹하고 사진을 찍었다"고 전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함께 있는 모습조차 포착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체육 당국이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 45명과 코치진 등 관계자에게 "러시아 선수와 코치 등과 대화하지 말고 함께 사진을 찍지 말라"고 권고한 영향이 컸다.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대회 초반 피겨 단체전에서 러시아 선수들을 만났지만 고개를 돌리며 피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두 나라 선수들의 포옹은 스포츠에 정치가 개입할 수 없다는 올림픽 정신을 다시 일깨운 감동적인 장면으로 회자되고 있다.

성환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