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청에도 내일은 해가 뜨겠지만

입력
2022.02.18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0년 전 그 선배는 노래를 참 잘했다. 기타 한 대 쥐고 부르던 그의 목소리는 지금도 기억날 만큼 매력적이었다. 원작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민중가요’들이 그가 부르던 노래 대부분이었는데, 그중엔 ‘사노라면’도 있었다. 그 노래를 그 선배를 통해 배운 나는 지금도 퇴근하다가 남들 못 듣게 조용히 중얼거리곤 한다.

사노라면을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은 몰랐다. 지난달 25일 박하영 전 성남지청 차장검사가 검찰 내부게시판에 사직의 변을 남기면서, 노래 한 소절을 불러 올린 것이다. 뜬금없는 곳에서, 불쑥 등장한 노래는 반가우면서도 조금 낯설었다. 박 전 차장검사에게는 미안하지만, 노래를 좀만 더 잘했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말이다.

박 전 차장검사의 사직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연루된 ‘성남FC 후원금 의혹’ 수사를 직속상관인 박은정 성남지청장이 무마하려 했다는 것이다. “수사가 더 필요하다”고 맞서던 박 전 차장검사가 결국 버텨내지 못하고 사직서를 던졌다는 논란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가고 있다.

논란에도 정작 박 전 차장검사는 침묵 중이다. 박 지청장 역시 “수사를 못하게 한 적 없다”는 입장을 내놓을 뿐, 저간의 사정에 입을 닫고 있다. 조용한 당사자들 주변으로, 입과 언론 기사를 통한 의혹만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물론 진실은 드러나게 돼 있다. 박 전 차장검사와 박 지청장 중 누구 말이 맞는지는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보완수사를 시작한 경찰수사 결과가 머지않아 나올 것이다. “진실의 가장 큰 친구는 시간”이라는 영국 작가 찰스 칼렙 콜튼의 말을 난 진심으로 믿는 편이다.

얼마 전 만난 검찰 고위간부는 “검찰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건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뻔히 알면서 왜 모르는 척이냐는 반문이 튀어나왔지만, ‘어쩌다 이 지경’이란 말 때문에 곧 사그라들었다.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과 별개로, 두 지휘관이 소통과 대화 또는 고집과 설득 등의 과정을 거치고도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는 지경의 상황. 이를 두고 ‘네 편’과 ‘내 편’으로 나누며 이를 재단하고 싸우는 내부 구성원들. 그게 지금의 검찰이고 박 전 차장검사가 던진 사직서로 드러나게 된 현주소라는 인식에 대한 공감이었다.

대선이 코앞이다. “내가 정권을 잡으면”이란 가정 아래 후보들은 이런저런 검찰의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당연하게도 이를 '개혁'이라 한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없애겠다”는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현 정부에서 훼손된 검찰의 독립성을 복구하겠다고 하고, “수사와 기소의 권한을 완전히 분리하겠다”는 이재명 후보는 미진했던 현 정부의 검찰 개혁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동시에 이들은 “어떻게 이 조직을 통제하고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박 전 차장검사는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개면 해가 뜨지 않더냐”라고 노래하며 검찰을 떠났다.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와해되고 망가진 검찰에도 밝은 날이 올까. 잔뜩 흐린 지금의 날이 개고 해가 뜰까. 수사권이 박탈되든, 5년 전의 검찰로 돌아가든, 지금 검찰에 필요한 건 개혁이 아니라 정상화가 아닐까. 한 달 후 탄생할 새 대통령이 그 답을 알았으면 한다.

남상욱 사회부 차장
thot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