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광명성절)을 조용하게 넘겼다. 경축 무대를 평양이 아닌 양강도 삼지연으로 옮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매년 하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도 건너뛰었다. 행사의 초점은 내부에 맞춰졌다. 잇단 미사일 발사로 긴장을 조성했던 1월과 달리 대남ㆍ대미 메시지도 생략하며 힘을 뺀 북한의 대외행보는 4월 15일 김일성 주석 생일(태양절)을 전후로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7일 노동신문 등에 따르면 북한은 광명성절을 맞아 각종 예술축전과 야회, 불꽃놀이 등 행사를 진행했다.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덕훈 내각 총리 등 고위 간부들은 백두산 밀영 김정일 생가를 방문했고, 평양 시민들은 각종 생필품과 식료품 등을 배급받아 ‘풍성한’ 명절을 보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동선’은 공개되지 않았다. 15일 삼지연시에서 열린 중앙보고대회를 제외하곤 다른 행사 참석 여부는 물론 금수산궁전 참배 소식이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 집권 후 매년 광명성절 참배를 빼놓지 않은 전례로 봤을 때 상당히 이례적이다.
무력 과시용 행사도 없었다. 한때 북한이 광명성절을 계기로 군사력을 과시할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열병식은 열리지 않았다. 광명성절과 태양절이 ‘정주년(5ㆍ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을 맞은 올해를 ‘혁명적 대경사의 해’로 정하고 대대적 경축을 예고한 것과 달리 수위를 대폭 낮춘 셈이다. 무엇보다 ‘혈맹’ 중국의 올림픽을 감안해 불필요한 정세 긴장을 피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통일부 당국자도 이날 “올해 김정일 생일은 대외 메시지보다 주민 결속에 중점을 두고 치러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김 위원장이 ‘백두혈통’의 뿌리인 삼지연에 머물면서 도발 시간표를 재점검했을 가능성은 있다. 북한은 지난달 핵실험ㆍ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유예(모라토리엄) 조치를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며 강경 행보를 예고했다. 이 때문에 베이징 동계올림픽ㆍ패럴림픽과 중국의 최대 정치이벤트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ㆍ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끝난 3월 중순부터 4월 태양절 사이에 한미를 향한 다음 압박 카드를 꺼내 보일 확률이 높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 당국도 중국의 올림픽을 의식하느라 광명성절을 국내용 행사로 끝낸 점을 아쉬워할 것”이라며 “두 선대 지도자의 생일을 경축하겠다고 공언한 이상 남아 있는 태양절에 더 큰 비중을 두고 무력시위 등 대외용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