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러는 거니/ 뭘 꿈꾸는 거니/ 바랠 걸 바래야지 대체/ 정신없는 거니/ 왜 그러는 거니/ 뭘 탐하는 거니/ 자신을 알아야지 대체/ 어쩌자는 거니'
장안의 화제가 된 안치환의 신곡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을 들으면서 문득 그의 준거집단이 궁금해졌습니다. 작사·작곡·노래까지 혼자 하는 싱어송라이터라지만, 발표할 때까지 정말 아무도 그의 노래를 듣지 않았던 걸까. 듣고도 걱정하지 않았던 걸까. 걱정하면서 차마 면전에 말을 못 했던 걸까. 아니면 속 시원하다고 응원했을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를 겨냥한 듯 시작부터 '거니' 후렴구를 반복하는 이 노래는, 안씨 주변인들의 취향이 어떻든 풍자에는 실패한 듯 보입니다. 안씨가 "노래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듣는 이의 몫이라는 것"이라면서도 굳이 가사 속 '그런 사람'은 "마이클 잭슨이 아니라 지금 감옥에 있는 박근혜 정권 비선 실세"라고 콕 짚어 입장문까지 발표했건만, 폄훼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사실 정치 풍자 논란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죠. 때론 정당 대리전 양상을 띠기도 했고, 별 주목을 못 받고 묻힐 뻔한 작품이 희생양으로 포장되기도 했습니다. 화제가 됐던 정치권 풍자 논란 정리합니다.
쿠팡플레이의 'SNL코리아 시즌2'가 방영되면서 국내 풍자 코미디를 탄압했던, 나아가 배우가 대통령 닮은꼴이라는 이유만으로 방송 출연을 금지당했던 1970, 80년대를 회상하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한데 그 졸렬한 시대가 지나고 대통령 직선제가 시작되면서 정치 풍자 콩트는 한때 붐을 일으켰습니다. 1987년 노태우 대통령이 한 방송국의 코미디언 송년모임에서 자신을 코미디 대상으로 삼아도 좋다고 선언한 게 계기가 됐죠. 인기를 견인했던 책 '대통령아저씨 그게 아니어요'(1988)는 이창동(여러분이 생각하는 영화감독 맞습니다), 김진경(네, 국가교육위원회 의장 맞습니다), 정도상 등 '당대 젊은 작가' 12명이 당시 권력 비리를 한껏 풍자한 콩트 29편을 실었습니다. 얼마나 인기가 있었던지, 아직 온라인 서점에서 종종 중고거래물이 뜰 정도입니다.
1992년 대선을 앞두고도 비슷한 책들이 봇물을 이뤘습니다. '오리공화국', '대변인 얼굴은 빨개', '농담', '김영삼은 따로 울지 않는다' 등은 대선 후보들을 뭉뚱그려 비판한 정치콩트집이죠. 가장 주목받은 건 6공화국 비리를 비꼰 콩트집 '각하, 백성도 마음대로 하겠습니다'였습니다. 정치소설을 활발히 집필해 온 고원정씨를 비롯해 박범신, 구효서 등 작가 13명이 참여했죠.
한데 당시는 '홍보 수단'으로 후보를 비꼰 풍자 콩트집을 셀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국민당 대선후보로 출마했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죠.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소설·전기류·콩트·만화 등 각 분야별로 책을 펴냈는데, 콩트집 제목은 '나라고 대통령 되지 말라는 법 있나'였습니다. 홍보 만화 '감자 트랙터'의 그림은 만화가 이현세씨가 그렸네요. 이 책들 역시 온라인서점 중고거래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풍자의 대상이 된 정치인들이 발끈한 사례, 십수 년 전에도 물론 있었습니다. 서양화가 노중기씨가 1995년 그린 작품인데요, 당시 슬롯머신 사건 담당검사로 일약 전국구 스타가 된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과 슬롯머신 업계 대부 정덕진씨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6공 황태자' 박철언 전 의원과 이건개 전 대전고검장을 콜라주 형식으로 풍자했죠.
대구에서 열린 개인전이 서울까지 소문났습니다. 노 화백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이전에 5‧18도 그리고, 전두환‧김영삼‧김대중 관련 그림도 그렸는데 유독 그 작품을 걸고 인터뷰 요청까지 들어왔다"면서 "홍 의원한테선 그 그림 팔라는 제의를 받았고, 박씨 측근한테서는 왜 홍 의원보다 작게 그렸냐며 한 소리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풍자에 다소 호의적이었던 정치권 반응은 2004년 전후 정치풍자를 선보이는 인터넷 사이트가 인기를 끌며 각박해집니다. 정치패러디 사이트 '라이브이즈닷컴', 민중가요 인터넷 사이트 '우리나라' 운영자가 17대 총선을 앞두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기도 했죠. 'OO당은 딴나라당' 같은 특정 정당을 비난하는 노래, 글을 게재했다는 이유인데 이를 두고 인터넷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지지자 간 인터넷 설전으로 그칠 뻔했던 정치 풍자는 그해 7월 청와대 홈페이지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패러디한 영화 포스터가 게재되면서 '파문'으로 번집니다. 한 네티즌이 박 전 대통령과 보수 매체와의 관계를 부적절한 성행위로 비유, 영화 '해피엔드' 포스터를 패러디해 청와대 홈페이지 회원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한데 관리자가 이걸 홈페이지 초기 화면 '열린마당' 맨 위에 게재했다가 해당 매체가 보도한 후 삭제했죠. 당시 이병완 청와대 홍보수석이 "부적절한 패러디가 게재된 데 대해 홍보 책임자로서 박 전 대통령에게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숱한 풍자나 모욕의 소재였습니다. 더욱이 정치인으로서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 '여성' 같은 태생적인 조건을 비꼰 풍자가 많아 나올 때마다 논란이 됐죠.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슷한 외모의 아이를 낳는 그림을 그려 전시하고 블로그에 게시한 민중화가 홍성담씨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홍씨를 검찰에 수사 의뢰했지만 불기소 처분이 나왔죠. 특정 사실을 적시한 게 아니라 의견 표출에 불과하단 이유에섭니다. 그보다 몇 달 앞서 박 전 대통령을 백설공주로 묘사해 그린 팝아티스트 이하씨도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가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습니다. 역시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추천·반대로 볼 수 없고, 대선 이슈와 관련해 시사성이 짙은 인물들을 예술활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일 뿐이란 취지였습니다.
국정 농단 사태로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2017년 1월 표창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국회의원회관에 전시된 박 전 대통령 풍자화는 당시 민주당 차원에서도 표 의원에게 당직 자격정지 6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리는 등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화가 이구영씨가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 '올랭피아'에 박 전 대통령의 얼굴과 최순실씨를 그려 패러디한 작품입니다. 당시 전시회에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찾아와 그림을 훼손하는 일까지 벌어졌죠. 당시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가 표 의원과 이구영씨를 검찰에 고발했지만,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정치 풍자가 논란이 될 때마다 창작자들이 하는 말이 있죠.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 끝을 본다." 대작가 이문열도 자신을 둘러싸고 공방이 벌어지니 이런 진부한 표현을 썼더군요. 때는 참여정부 말기, 논란이 된 작품은 출세작 '사람의 아들'의 후속 격인 '호모 엑세쿠탄스(Homo Executans)'입니다. 호모 엑세쿠탄스는 '처형하는 인간'이란 뜻으로 작가가 만든 조어. 소설은 신성(神性)과 악성(惡性)을 대변하는 두 무리의 전쟁을 통해 386세대인 주인공이 '처형하는 인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립니다.
이 중 논란이 된 부분은 작중 인물들의 입을 빌려 참여정부‧386세대를 비판한 후반 일부입니다. 2006년 한 계간지에 1년간 연재됐는데, 정식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도 전에 이 부분만 '똑' 떼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논란이 됐죠. 이 일로 2007년 초 기자 간담회까지 연 이 작가는 "어떤 이는 (이 소설을) 현실정치를 풍자한 정치소설로 생각하는데, 그런 내용이 들어간 부분은 원고지 2,800장 분량 가운데 200장을 넘지 않는다"고 항변했지만 당시 이 작품을 정치소설로 읽는 사람들, 문단에서도 꽤 있었습니다.
문학평론가 정문순은 그해 가을 '작가와 비평'에 실은 리뷰에서 "(소설 호모엑세쿠탄스는)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대북송금 수사, 대통령 탄핵 등 참여정부 집권 이후 정치적 사안을 배경으로 앉히는 한편 이것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성서와 예수, 그리고 고대의 유대 역사를 곳곳에 풀어놓은 작품"이라 평하며 "애초에 작품과 관련해 논란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그 자신"이라고 반박하죠.
조용히 묻힐 뻔했던 작품이 풍자 논란으로 역사에 기록된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근형 연출의 연극 '개구리'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닮은 캐릭터와 대사가 문제가 됐습니다. "우리 딸애 작년에 기말시험 본 거 있잖아요. 그걸 가지고 커닝했다, 점수 조작했다… 옛날 같으면 그냥 탱크로 확!" 이런 말이 속출하죠. '우리 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말시험'은 대통령선거를, '점수 조작'은 대선에서 득표 수 조작을 비유했습니다. 노골적인 조롱이 많아 제작을 맡았던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조차 "풍자는 필요하지만 작품성이 떨어져서"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실제 '현실에 대한 통찰의 부재'(한국연극평론가협회 리뷰) 등 혹평이 쏟아졌습니다.
한데 이 작품, 청와대의 비상한 관심을 받으며 반전됩니다. 박영수 특검팀에서 수사받은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들이 '개구리' 공연 후 청와대에서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가 내려왔다고 진술하면서 역사에 길이길이 기록되게 된 거죠. 임기 두 달을 남기고 사표를 쓴 손진책 감독은 블랙리스트 파문이 공식화된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도 "정말 아쉬웠던 것은 그 연극을 둘러싼 이념 논란이 아니라 연극적으로 더 좋은 작품이었어야 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말하는 풍자와 조롱의 구별법입니다. 풍자를 의도한 각종 창작물과 말을 세상에 내보이기 전, 자신의 풍자가 득이 될지 독이 될지 헷갈리시는 분들은 저 기준을 적용해보시기 바랍니다. 저 기준에 썩 들어맞진 않지만, '내 편 결속용'으로 굳이 배포하고 싶다면 이어지는 경고를 복창하며 참아보시기 바랍니다.
'비판은 언제나 가능하다. 풍자는 특정한 경우에 가능하다. 그러나 조롱은 언제나 불가능하다. 타인을 조롱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저급한 쾌감이며 거기에 굴복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가장 저열한 존재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