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한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입력
2022.03.09 04:20
4면
박정의 연출가



편집자주

20대 대선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소박하지만 당찬 바람들을 연쇄 기고에 담아 소개합니다.


대선이거나 총선이거나 정치권의 변동이 있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근거 없는 기대를 한다. 이때가 그래도 정치권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적어도 들어주는 척이라도 하는 때이니, 어리석게도 매번 기대를 갖는다.

앞으로의 국가 발전 목표가 문화강국이라니 이번 대선은 정말 우리 사회에서 예술과, 예술가의 존재와, 국민들의 다양하고 풍족한 예술 향유의 가치를 알고 이를 정책적으로 준비하는 분을 뽑는 선거가 되길 바란다.

진정성이 있든 없든 대부분의 후보들이 문화강국을 만들겠다고 하니 일단은 다행이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나에게, 또 (실망할지언정) 기대를 갖는 시간이다.

그러나 말은 그 사람의 철학과 인식수준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들이 사용하는 말투를 보면 여전히 기대하긴 이른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든다.

후보자들이 우리들에게 “무엇을 해주겠다” 또는 “무엇을 하겠습니다”라고 한다. 그저 말장난을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말투에서 자꾸 수혜자를 바라보는 시혜자의 말투가 느껴지는 것은 괜한 알러지 반응일까?

국민의 세금으로 예술정책을 펼치고 예산을 사용하는 것은 정말 좋은 예술 작품을 많이 만들기 위한 모두의 노력이 되어야 한다. 예술가들이 작품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간섭받지 않고 창작할 수 있는, 국가의 검열은 당연히 없어야겠지만 그런 차원을 넘어 자본의 간섭도, 시장의 간섭도 가급적 덜 받으면서 나름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예술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함이어야 한다. 그렇게 뿌리에 양분을 주면 나무는 자랄 것이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때서야 열매를 나눌 권리가 주어지는 것 아닐까?

예술인 증명을 위해 먼저 예술 활동을 해야 한다. 그러니 활동을 시작할 기회는 모든 청년에게 주어져야 한다. 평생 동안 무대를 지켜왔는데 나이가 들어 설 자리가 없다. 그래도 활동을 하지 않으면 자격이 상실된다. 이게 현실이다.

좋은 예술 정책은 정부의 시혜가 아니다. 예술가와 정부 그리고 국민들이 지혜를 모아 우리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킬 방안을 찾는 과정이다.

작은 소망을 말하자면 전국의 수많은 공공 극장이 예술가의 일터가 되고 지역 주민의 놀이터가 될 수 있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해 줄 수 있는 그런 정부가 선출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