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러시아 세력이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이 전쟁 위기의 핵심 뇌관으로 부상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정부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거둬들이는 분위기다. 우크라이나는 당초 2019년 2월 21일 발효된 개정 헌법에 유럽연합(EU)과 나토 가입을 추구한다는 내용을 전문과 3개 조항에 담았다. 최상위법에 나토 가입을 명문화하면서 서방에 안보를 의지하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침공 위협이 현실화하면서 나토 가입 추진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이리나 베레시추크 우크라이나 부총리 겸 점령지 재통합 장관은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TSN방송 인터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나토 가입 문제를 국민투표에 회부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다른 선택지나 도구가 없을 경우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최근 러시아의 침공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를 타개할 수 있는 방안으로 나토 가입 여부 철회를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자국 안보를 위협하는 것이라며 극도로 반발하면서 접경 지역에 15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배치하면서 전쟁 가능성을 높여왔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철회 가능성은 최근 잇따라 제기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앞서 14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회담을 마친 뒤 “우리가 선택한 길(나토 가입)로 계속 가야 한다고 믿는다”면서도 “우리에게 나토 가입은 절대적 목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나토 가입은) 우리에겐 꿈 같은 얘기일지도 모른다”고 사실상 포기를 시사하는 듯한 발언도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헌법은 대통령과 의회가 EU 및 나토에서 완전한 회원국 지위를 추구한다는 내용을 명시했지만, 국민투표에서 반대가 우세할 경우 이를 철회할 수 있다. 러시아의 침공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정치권이 러시아를 향해 유화 제스처를 보내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영구적으로 포기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올가 스테파니시나 우크라이나 유럽-대서양 통합담당 부총리는 이날 “6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는 우크라이나가 유럽군사동맹에 가입할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다만 6월 나토 정상회의는 우크라이나의 가입 여부를 바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며, 우크라이나의 향후 10년 전략이 나토 회원국으로서 부합하는지를 들여다보는 회의라는 점에서 스테파니시나 부총리는 러시아가 우려할 부분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서방 국가들은 나토 가입 여부는 각 나라가 결정할 사안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추진하기를 원한다면, 나토는 ‘개방 정책(Open Door Policy)’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전날 “나토는 핵심 원칙을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개방 정책을 재확인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