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미국도 외면했던 입양인들

입력
2022.02.17 19:00
25면

편집자주

20여 년 미 연방의회 풀뿌리 활동가의 눈으로 워싱턴 정치 현장을 전합니다.

무국적 입양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미국 하원을 통과했다. 지난 4일 연방하원은 '미국경쟁력강화법안'에 '입양인시민권법안'을 포함해 통과시켰다. 기대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했던 기적 같은 일이다.

연방의회를 드나든 지 20여 년이지만 지금처럼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때는 없었다. 극심한 정파적 양극화로 시민단체 입법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게다가 중간선거를 앞둔 의원들은 초당적 목소리를 내는 시민단체들까지 만날 여유가 없다. 내가 이 일에 매달려 온 지 벌써 5년, 솔직히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던 시점이었다.

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민주당 애덤 스미스 의원은 워싱턴주 시애틀이 지역구다. 의정경력 24년째의 노련한 중진의원으로, 의회 내 가장 요직 중 하나인 하원 군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미국의 국방 관련 예산과 정책은 그의 의견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그의 사무실에는 항상 각종 현안이 산같이 쌓여 있다. 특히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 뒤로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망가뜨린 펜타곤을 바로잡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스미스 의원과 그의 입법보좌관을 면담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그는 말이 없고 무표정해 좀처럼 속내를 알기 힘들다. 왜 그가 입양인시민권법안을 네 번이나 연속해서 대표발의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굳이 동기를 찾는다면 어렸을 적 외삼촌에게 입양되었다는 것, 그리고 워싱턴주 상원의원 시절 한국전쟁 고아로 미국에 입양돼 주 상원의원이 됐던 신효범 의원과 친분을 갖고 의정활동을 했다는 것 정도랄까. 다만 몇 차례 만남을 통해 그가 입양인 무국적 문제를 기본적으로 시민의 인권문제로 본다는 것, 그리고 시민들의 의지와 행동에 대해선 어떻게든 반응을 하는 정치인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2016년 스미스 의원이 이 법안을 처음 제출했을 때 공동발의 의원은 고작 7명이었다. 2018년 두 번째 발의 때 46명의 의원이 함께했고 2019년에는 96명의 의원이 참여했다. 그리고 네 번째 상정인 이번 회기에는 절반만 지났음에도 민주 31명, 공화 32명 등 63명을 확보했다. 스미스 의원은 지체 없이 넨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주도한 미국경쟁력강화법안에, 그의 많은 현안 중 입양인시민권 법안을 우선적으로 포함해 마침내 하원을 통과시켰다. 스미스 의원의 의지와 시민단체의 헌신 덕이었다. 상원과 대통령 서명을 남겨두고 있지만 7부 능선은 통과한 셈이다. 20여 년 연방의회를 상대로 한인과 한국 관련 활동을 하면서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이만큼 커졌던 적은 없었다.

입양인시민권법안의 수혜자 중 절반 이상은 한인 입양인들이다. 약 2만 명에 이른다. 주로 전쟁 고아이거나, 한국에서 친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입양됐지만 양부모에게도 버림을 받은 경우다. 양부모가 따로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아 미국 국적도 없고, 한국 국적도 이미 없는 사실상 국제 미아들이다. 국제 입양이 미국의 관용과 기독교정신이 취지라고 하지만 이면엔 이러한 참혹함이 있다.

이들은 한국인으로 한두 세대 먼저 태어난 죄밖에 없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지우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진실이고 현실이다. 반만년 역사 이래 민족의 활력이 가장 번성하다고 목청을 높이는 정부가 미국 내 무국적자 한인 입양인의 숫자가 2만 명에 이른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모른 체 방치한 것이다. 한국 정부의 도덕적 책임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김동석 미국 한인유권자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