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제가..." 사린(박하선)이 직장 상사에게 임신 얘기를 꺼내자 부장은 헛기침을 하며 놀란 듯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축하해. 회사는 계속 다닐 건가?" 사린은 부장이 되레 퇴직을 바라는 것 같아 마음이 복잡하다. 12일 공개된 카카오TV 드라마 '며느라기2...ing' 7회의 한 장면이다.
드라마는 임신부가 된 워킹맘이 회사, 시댁, 집, 대중교통 등 일상에서 겪는 짠내 나는 현실을 덤덤하게 풀어 공감을 얻고 있다.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엔 '회사일은 어떡하지, 내 경력은 어디로 사라지지,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없어지는 건가 싶어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엉엉 울어 엄청 공감했다'(쑥빠뚜***), '헬입덧(지옥에 간 듯 심하게)하면서도 신입사원이라 산달까지 일했다'(차이***) 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17일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카카오TV와 국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왓챠에 7회까지 공개된 '며느라기' 시즌2 누적 조회수는 15일 기준 1,800만 뷰다. "미세먼지처럼 잘 드러나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이는 문제점을 찾게 하고, 그 차별을 들추는 게"(정덕현 문화평론가) '며느라기' 시리즈의 인기 비결이다.
워킹맘들은 이 드라마의 어떤 점에 공감하고, 어떻게 회사와 집에서 며느라기(期)를 보내고 있을까. 30대 사회복지사, 40대 교사, 50대 콘텐츠 제작사 대표 등 직종이 서로 다른 세 워킹맘을 인터뷰한 뒤 그 얘기를 문답으로 정리했다.
-드라마에서 사린이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니 프로젝트를 넘기라는 압박을 받는다.
"임신 3개월 됐을 때 임신 사실을 일하던 데이케어센터에 알렸다. 센터장이 '축하한다'고는 했는데, 육아휴직을 걱정했다. 출산휴가는 쓸 수 있는데, 업무 특성상 육아휴직은 곤란하다더라. 황당해서 노무사를 찾아갔고, 자문을 받아 센터장에게 육아휴직을 요구했다. 결국엔 쓰게 해 줬지만, 나중에 업무적으로 볶였다.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지 임신 8개월 차에 조산기가 왔다. 무급 병가를 썼고." (사회복지사 하모씨·32)
"난임휴직을 사용하고 싶다고 학교에 말할 때 눈치가 보였다. '보직을 편하게 주겠다'며 회유했다. 기간제 선생님이 들어오면 연속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 같다. 결국 결혼한 지 7년 만에 난임휴직을 받았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학교로 돌아오니 바로 고3 담임을 맡기더라. 학교에서 쉬고 왔다고 생각해 고된 자리를 준 거다. 정말 쉰 게 아닌데. 워킹맘들은 알 거다. 차라리 직장에 나오는 게 집에서 아이 키우는 것보다 좋다는 걸."(교사 권모씨·43)
"회사 다니면서 다섯 번 유산했다. 습관성 유산이었는데, 그땐 정말 회사에서 임신한 직원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여상사도 대부분 미혼이었고. '전쟁터에 나가는 데 임신을 한다고?' 이랬으니까.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유산했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날 보는 분위기가 안 좋았다. '일로 슬픔을 이겨내야지'라고 말하는 시대였다. 사무실에선 임신한 직원이 있든 없든 담배를 피웠다. 평일엔 밤 11시 전에 집에 간 적이 없는 것 같다. '임신하면 일을 쉬겠다'는 약속을 미리 받고서 회사를 옮겼고, 그렇게 간신히 출산을 했다."(콘텐츠 제작자 김모씨·51)
-사린이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는 데 임산부 배려석에 앉질 못한다. 공공장소에서 임산부로 겪었던 불편이 있다면.
"만삭일 때 지하철 타서 노약자석에 앉으려고 했더니, 다른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밀려 자리를 놓쳤다. 병원 갈 때 버스를 탔는데, 노약자석에 학생이 앉아 이어폰을 꽂고 일어나질 않더라. 결국 병원까지 서서 갔는데, 갑자기 서러웠다. 그 이후엔 택시 타고 병원 다녔다."(하씨)
"임산부 배지가 없으면 배려석에 앉기 힘들다. 동료가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더니 '옛날엔 다 애 배고 밭일 했다'고 어떤 할머니한테 혼났다고 하더라. 임신 초기가 제일 힘들고, 아이 엄마에게 위험하다. 만삭일 땐 아이가 자리를 잡아 차라리 낫지. 임신 초기 때 배가 나오지 않아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그때 배려를 받지 못하면 서글프다."(권씨)
"유산을 자주 하다 보니 필사적으로 노약자석을 찾았던 것 같다(웃음)."(김씨)
-사린의 큰형님은 시댁 제사 독립을 선언했다. 사린의 큰형님 부부는 조상 제사를 각자 챙긴다. 제사 등 시댁 행사 참여 기준을 어떻게 정했나.
"결혼 1년 차 땐 시부모님 결혼기념일까지 챙겼다. 사린이처럼 시댁에 잘 보이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시부모님 생신과 명절 차례 정도만 참여한다. 다만, 남편이 반드시 음식 준비를 같이 하게 만든다. 전 부칠 때 일부러 시어머니 들으라고 남편한테 '뭐해? 같이 부쳐'라고 한다. 이제 아이가 둘이라 애를 봐야 하니 '내가 애 볼게, 당신이 전 부쳐'하고. 웹툰으로 '며느라기'(2017)를 먼저 봤는데, 사린이처럼 살지 않기로 다짐했다(웃음)."(하씨)
"결혼 초에 남편이랑 '용돈도 행사도 양가 똑같이 챙기자'고 합의했다. 우린 시댁이 기독교 집안이라 제사를 따로 지내지 않는다. 시부모 생신만 챙긴다. 하지만 명절 땐 어쩔 수 없이 시댁이 메인이다. 이번 설 연휴에 시어머니가 며느리들 단톡방에 사흘 치 메뉴를 준비했다고 올렸다. 며느리들한테 음식 장만하라는 게 아니라 '내가 해 놓을 테니 와서 먹어라'는 건데, 안 간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게 며칠을 시댁에서 보냈다. 친정엔 설 당일 오후에만 갔다왔다."(권씨)
"일하는 여성은 명절이 제일 싫을 거다. 시댁 가기 전까지 일하다 가면 또 일해야 하니까. 연휴 내내 일하고 끝나면 다시 회사에서 일하고. 그래서 명절 땐 늘 초주검 상태였다. 맞벌이를 해서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서 같이 살았다. 오랫동안 명절 내내 같이 보냈다. 명절보다 정월대보름 때가 더 기억에 남는다. 찰밥, 나물 만드는 게 은근 손이 많이 간다. 시어머니는 정월대보름 때 여자들이 창포물에 머리 감고 그네 타고 놀 테니, 여자들이 차린 밥으로 남자들이 알아서 챙겨먹어라는 취지에서 식어도 맛있는 찰밥을 한 것이라고 했다. 단옷날이랑 혼동하신 거 같은데, 여튼 그 음식 준비하다 '제발 나가서 안 놀아도 좋으니 정월대보름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웃음)."(김씨)
-결혼 1년 차였을 때 사린이 시어머니 집에 가 미역국을 직접 끓여준다. 그다음엔 사린이 일이 바빠 구일(권율)이 대신 끓여주고. 비슷한 경험이 있나.
"남편이 내게 '엄마 생신 미역국 좀 끓여줘' 했다. 그래서 '알았어' 한 뒤 다음날 아침에 남편을 깨웠다. '뭐해? 당신 엄만데 미역국 같이 끓여야지' 했다. 처음엔 물론 시댁 가서 휴대전화로 블로그 뒤져가며 떡국 끓이고 이것저것 다했다. 이젠 시부모님 생신 때 외식한다.' '짬밥'이 쌓여서(웃음)."(하씨)
"웹툰 보고, 진짜 미역국 끓여주는 며느리가 있다고? 하며 놀랐다. 명절에 시댁 가서 제일 당황스러웠던 건 남자 따로 여자 따로 상을 받는 거였다. 남자 상, 여자 상에 올라가는 음식도 다르고."(권씨)
"미역국과 관련해선 산후조리 때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기억이 더 세다. 여러 사정으로 시어머니가 내 산후조리를 해주셨는데, 남편이 '너 복 많은 줄 알아. 며느리 산후조리 해주는 시엄마가 어딨냐'고 하더라. 나 참, 어이없어서. 시어머니가 산후조리를 해주면 내가 '어머니, 분유 좀 타주세요' 할 수 있겠나. 퇴근 후 시어머니 눈치 보여서 남편 시켜먹지도 못하고."(김씨)
-당신에게 며느라기란.
"식구인 듯 식구 아닌 관계?(웃음)."(하씨)
"시어머니가 날 딸처럼 대하며 시아버지 흉을 보는데, 내가 '아드님도 아버님 닮아 그래요' 했더니 웃으면서 이러시더라. '얘, 나도 네 시아버지가 일할 땐 부엌일 안 시켰어'라고. 나도 웃으면서 '어머니, 저도 일해요'라고 했다. 딸 같은 며느라기라고 하지만, 자아를 드러내는 순간 균열이 난다."(권씨).
"시댁은 시댁이다. 시댁 식구를 클라이언트(고객)라 생각한다. 그래야 내 속이 편하다."(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