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예바 외면하는 올림픽… '침묵 중계'에 기록도 인정 못 해

입력
2022.02.1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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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라 발리예바(16ㆍROC)의 베이징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경기에 우리나라 지상파 3사는 물론, 미국 올림픽 주관방송사 NBC의 중계진도 침묵을 지켰다. 도핑 양성반응에도 경기 출전을 강행한 발리예바 측에 대한 항의로, 이 종목 메달이 결정되는 17일 프리 경기에서도 ‘침묵 중계’가 이어질지 주목된다.

발리예바는 15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이 종목 쇼트프로그램에 26번째 선수로 출전했다. NBC방송은 이 경기를 생중계했지만 발리예바가 연기하는 동안 별다른 멘트 없이 해설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다. 이날 NBC 해설은 타라 리핀스키(1998 나가노올림픽 여자 싱글 금메달)와 조니 위어(2008 세계선수권 남자 싱글 동메달)가 맡았다. 발리예바의 연기가 끝난 뒤 위어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이 카밀라 발리예바의 쇼트프로그램이라는 것뿐”이라며 더 이상의 언급은 피했다. 리핀스키도 “만약 발리예바가 메달을 따면 시상식이 열리지 않을 뿐더러 올림픽에 참가한 모든 선수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면서 “다른 선수들의 인생과 올림픽 경험에 얼마나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지 생각했으면 좋겠다”라고 비판했다. 미국 뉴욕포스트는 “발리예바의 올림픽 출전 문제를 바라본 리핀스키와 위어의 조용한 분노”라고 표현했다.

우리나라 방송사도 비슷했다. KBS와 SBS 해설진은 발리예바가 연기를 펼친 약 3분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첫 번째 점프에서 착지 실수가 나오면서 발리예바가 휘청거렸지만 이때도 중계석은 침묵했다. MBC 해설진은 기술에 대한 설명만 간단히 덧붙였다. 경기 후 이호정 SBS 해설위원은 “금지약물을 복용하고도 떳떳하게 올림픽 무대에서 연기를 한 선수에게는 어떤 멘트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발리예바의 도핑 위반 사실을 알고도 함께 경기를 치른 선수들의 반발도 나오고 있다. 쇼트 8위 알리사 리우(17ㆍ미국)는 “도핑 사건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알진 못한다”면서도 “하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도핑 위반 선수와 깨끗한 선수가 경쟁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은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11위 머라이어 벨(26ㆍ미국)도 “나는 클린 스포츠를 지지한다. 이것이 올림픽과 우리 스포츠의 모든 것”이라고 의견을 개진했다.

발리예바를 비롯해 쇼트프로그램 6위에 오른 한국의 유영(18ㆍ수리고)과 9위 김예림(19ㆍ수리고) 등 25명은 17일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프리스케이팅에 참가한다. 당초 이 경기는 쇼트프로그램 상위 24명까지 출전할 수 있지만 1위에 오른 발리예바가 포함되면서 ‘상위 25명’으로 엔트리를 1명 늘렸다.

한편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6일 “발리예바의 기록에 ‘별표’(*)를 붙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발리예바의 도핑 논란이 해결될 때까지 그의 올림픽 기록을 '잠정 기록'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발리예바가 금지 약물 문제에서 깨끗하다는 결론이 나와야 기록에 붙은 특수 표시도 지워질 것으로 보인다. IOC관계자는 “(발리예바의 기록은) 잠정 기록으로 표현된다. 향후 조사 결과에 따라 확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IOC는 그러나 발리예바에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발리예바의 안녕이 최우선 고려사항”이라며 “수많은 추측의 중심에 선 발리예바가 무척 힘들 것이다. 이번 사안에 신중하게 접근해 달라”고 당부했다.

강주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