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발발 상황으로 빠져들던 우크라이나 사태가 수렁 직전에 멈춰 섰다. 미국이 러시아의 침공일로 예측했던 16일(현지시간) 하루 전 일이다. 러시아가 위기 국면 후 처음으로 군병력 일부를 철수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이후 크림반도에서 병력을 철수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전쟁 위기에서 한숨 돌리면서 미국과 러시아의 외교 협상도 재개됐다.
다만 미국 등 서방 국가는 경계심을 여전히 늦추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겨냥한 러시아 정예 병력이 건재해 언제든 침공을 감행할 가능성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5일 백악관 연설에서 “그것은 좋은 일이지만 미국은 아직 이를 검증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가 크림반도 등에서 일부 병력 철수를 시작했다고 발표한 데 대한 평가였다. 우크라이나 주변에 배치된 러시아 병력 추정치도 기존 13만 명 대신 15만 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은 매우 높고 우리는 침공 시 단호히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우크라이나 북쪽 벨라루스에 러시아가 야전병원을 구축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러시아의 침공 준비가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해석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도 병력 일부 철수가 러시아의 위장술책일 가능성을 언급했다.
반면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보도문을 통해 "크림반도에서 훈련을 마친 남부군관구 소속 부대들이 철로를 이용해 원주둔지로 복귀하고 있다"며 군사장비를 실은 열차 이동 모습을 동영상으로 공개했다. 앞으로 4주 뒤 서부 지역 병력이 철수할 것이라는 아일랜드 주재 러시아 대사 발언도 나왔다.
러시아의 철군 영상 공개는 실제 철수하는지 믿을 수 없다는 서방 진영의 의심에 따른 반박으로 보인다. 서방 측 군사전문가들은 러시아 발표와 달리 위성사진 등을 통해서는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포착된 게 없다고 지적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러시아가 중부와 동부에 배치한 정예 부대는 침공 대형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공격용 헬기와 전투기 역시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날 우크라이나 시중은행과 국방부, 군 온라인 사이트가 사이버 공격을 받아 한때 마비되는 등 긴장은 계속됐다.
철군 확인 공방에도 불구하고 외교 협상은 다시 힘을 받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전화통화를 갖고 러시아가 제기한 안전 보장 문제를 협의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라브로프 장관은 러시아가 제기한 모든 문제에 대해 ‘안보불가분성 원칙’에 따른 실용적 대화를 촉구했다”라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존중해 달라는 요구다.
이에 블링컨 장관은 "검증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의미 있는 긴장 완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1시간 동안 전화통화를 하면서 우크라이나 문제를 협의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 병력 일부 철수를 “좋은 신호”(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라고 평가했다.
러시아가 요구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동진 금지와 러시아계 분리주의 세가 강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분리 독립 인정 등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올라왔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과 나토는 동맹 개방정책은 협상 불가라고 밝혔지만 나토ㆍ러시아 관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한편 군비 통제, 군사훈련 제한 등의 제안을 내놨다”라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연설에서 “우리는 새로운 군비 통제 및 투명성 제고 방안, 새로운 전략적 안전성 추구 방안 등을 제안하고 있다”라고 밝혔다.